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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타집서 찾은 인생 2막 전종규·이정임 부부

중앙일보

입력

15년 전 요리 공부를 위해 밀라노에 다녀온 부부는 이제 함께 파스타를 만들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주방에선 남편이 파스타를 만들고, 홀에선 아내가 서빙을 하며 오래된 손님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밀물처럼 몰려오는 세월의 파도도 이 부부의 꿈을 어쩌진 못했나 보다. 거친 회벽에 나뭇결을 살린 지중해식 밝은 분위기, 꽃을 이용한 자연적인 인테리어, 화사한 웃음과 목소리에 어우러진 한 접시의 파스타는 중년 부부의 제2의 인생을 간직하고 있었다.

돈보다 부부 함께하는 일이 진짜 노후

“노후 준비에 있어서 돈도 중요하지만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 같다. 머리가 하얗게 변해도 신혼 시절처럼 오순도순 함께 할 일이 있다는 것 만큼 행복한 것이 있을까.”

오래 전부터 ‘부부가 함께 하는 삶’을 꿈 꿔오던 전종규(59)?이정임(57) 부부는 조그만 파스타집을 운영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15년 전, 부부가 같이 요리 공부를 위해 밀라노에 다녀온 이후 지난 2000년부터 남부시칠리아식 이탈리아 파스타집을 운영하며 24시간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부부는 20대에 한 공기업의 같은 부서에서 만나 결혼했다. 남편 전씨가 29세 되던 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같이 회사를 그만두고, 신촌에서 출판 관련 자영업을 시작했다. 40대가 되면서 화장품과 같은 여성용품을 취급하는 가게를 꾸렸으나, 이내 접고 노년에도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업종을 찾아 다녔다. 전씨는 “당시 엄청 잘되는 냉면집에서 노하우를 제공하겠다는 제의가 있었는데 손이 느리고 허술한 우리 부부와는 맞지 않을 것 같았다”며 “여유로우면서도 노년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몇 년간 창업전시회를 전전했다”고 회상했다.

이들은 불경기의 그림자가 짙어가던 1996년 여름, 한 가게에서 처음 ‘파스타’라는 음식을 접했다. 이탈리아 음식점의 가능성을 본 부부는, 파스타가 유행이라는 일본에 가서 요리학원에 다닐 생각으로 일본어를 배웠다. 하지만 ‘파스타의 본고장은 역시 이탈리아’라고 결론 짓고, 1997년 11월 밀라노로 떠난다.

현지에서 정통 파스타를 공부하던 부부는 우리나라가 IMF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6개월 만에 귀국해야 했다. 두 사람은 집에서 배운 것을 연습하며 시간을 보내다 2000년 5월, 분당구 서현동에 꿈에 그리던 파스타집 ‘돈파스타’를 오픈했다.

유럽 여행하며 부부 사이 더 가까워져

처음 1년 동안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들 부부에게 전화위복을 만들어 준 것은 다름아닌 ‘초심’ 이었다. 돈보다 부부가 함께 일하며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처음의 마음을 기억해냈다.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되자 파스타의 질과 맛이 따라서 향상됐다.

전씨는 “요리를 공부했지만 실전부족으로 문제가 있었다”며 “손님이 없어 장사가 안 되는 동안 마음을 가다듬고 실제 필요한 요리 솜씨도 키울 수 있었다”고 전한다.

전씨가 ‘레시피 여행’을 구상한 것도 이즈음이다. 이탈리아 전통조리법을 배우고, 이에 기반한 천연 건강조리법을 개발하기 위해 매해 레시피 여행을 하기로 한 것이다. 전씨와 아내는 매년 9월 한 달 동안은 가게를 쉬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2003년 시칠리아를 시작으로 2005년 스페인, 2006년 프랑스 파리와 중부 이탈리아, 2007년 프로방스, 2008년 그리스, 그리고 2009년에는 터키를 다녀왔다. 2010년과 2011년에는 시칠리아와 스페인을 재방문 했다.

전씨는 “이탈리아 남부 출신 선생님에게 파스타를 배워서 시칠리아 풍으로 조리 컨셉트를 잡았는데, 당시 경제 여건의 악화로 짧게 배우고 돌아와야 했다”며 “더 배우지 못한 아쉬움도 여행을 계획하게 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그간 여행은 각 나라의 전통음식과 맛을 충분히 경험하게 했다. 전씨는 “특히 2003년 여름휴가를 겸해 방문했던 시칠리아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올 수 있었다”고 전한다. 아내 이씨도 “가게를 한달 동안 쉬기 때문에 타격이 있긴 하지만, 현지의 입맛을 느끼고, 듣고 보고 즐기는 과정이 결국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행을 하며 부부 사이가 더욱 돈독해진다는 점이다. 이씨는 “함께 여행하는 동안 서로를 돌아다 보게 되고 이는 큰 기쁨이다”고 고백했다.

이들은 함께 여행하며 체험한 현지의 풍경과 음식을 15권의 사진첩으로 묶어 가게에 비치해뒀다. 맛으로뿐 아니라 손님들의 눈까지 즐겁게 해주고 있다. 직접 찍은 남부 유럽 사진에 꼼꼼하게 자필로 적은 설명은 여러 권의 여행책으로 펴내도 될 만큼 섬세하기 그지없다. 이들 부부는 “건강에 문제가 없는 한 70살, 80살까지 함께 파스타를 만들고 싶다”며 “유럽과 지중해 여행도 최소한 10번은 더 가야 하지 않겠나”며 웃어 보였다.

<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사진="김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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