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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바로보자] 제 할일 못하는 정치

중앙일보

입력

내치(內治)에 어두운 그림자가 깔리고 있지만 정치권은 표류하고 있다.

국정 위기상황에서 정치권의 대처능력과 그 효율성이 떨어진 지 오래다. "거꾸로 위기의 진원지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 (숙명여대 朴載昌교수.정치학)

정치권도 위기상황을 실감한다. "정현준 게이트에 금감원 간부가 연루돼 개혁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도덕적 해이야말로 위기의 조짐" (민주당 姜賢旭의원)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정치권이 위기 극복에 안이하게 대처한다" 며 정통 경제관료 출신인 姜의원은 자괴감을 감추지 않았다.

4.13총선이 끝난 지 6개월반이 지났지만 여야는 선거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는 8일 검찰총장과 대검 차장에 대한 국회의 탄핵안 처리일정은 길고 긴 후유증을 보여준다. " (이화여대 金錫俊교수.정치학)

국회의 4개월 공전 과정에서 금융지주회사법.기업구조조정법 등 1백10여개 민생.경제 법안 처리가 뒷전으로 밀렸고, 이는 경제개혁분야의 부담으로 넘겨졌다.

총선은 헌정 사상 처음인 '야瑛?제1당인 여소야대'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나 "여야가 거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서 정국의 불안정성이 높아졌다." (고려대 任爀伯교수.정치학)

민주당은 그런 상황을 감수하는 듯 상생(相生)의 정치를 내세우다가, 다른 한때는 국회법 강행에서 드러나듯 '밀어붙이기' 로 나오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오랜 장외투쟁은 이유가 어떻든 거대 야당의 정국 동반 책임론과는 거리를 둔 사례로 꼽힌다.

총선의 후유증에다 새로운 정치환경에 익숙하지 못한 여야의 행태와 접근자세는 정치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는 국정 혼선을 차단.조정하는 정치권의 국정 위기관리 능력을 떨어뜨린다.

국정 위기론의 한복판에는 청와대의 민심 관리 난조가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사회개혁의 야심작으로 내놓은 의약분업은 거듭한 의료계 파업으로 대다수 국민에게 "개혁이 지긋지긋하다" 는 개혁 피로감을 확산시켰다. (민주당 朴炳潤의원)

이는 '준비된 정부' 라는 현 정권이 다듬어온 이미지를 헝클어뜨렸다. 金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과 함께 '내치에 힘을 기울이라' 는 여론에는 민심의 이런 분위기가 깔려 있다.

◇ 불안정 정국의 장기화=金대통령과 李총재의 지난달 9일 영수회담을 계기로 '반짝 화해' 국면이 있었다.

그러나 검찰의 선거사범 수사 발표에 대해 한나라당이 편파 의혹을 내걸면서 대치상태로 되돌아갔다.

정국 불안정성의 요인에는 현 정권이 한나라당을 다루는 전략 부재가 꼽힌다. 임혁백 교수는 "지역.이념적으로 소수파인 DJ정권이 대야(對野)정책의 일관성이 부족해 정국의 불안정성을 자초하고 있다" 고 분석했다. 야당을 협력적 동반자로 삼았다가 적대적 경쟁자로 돌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쟁점을 타협해 나갈 '게임의 룰' 이 실종됐다는 점도 지적된다.

6공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문희갑(文熹甲)대구시장은 "개혁과정에서 야당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며 "대화정치를 위해 줄 것은 주고 받을 건 받아야 한다" 고 주문했다.

1989년 여권 일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야당측 협조로 통과됐던 토지공개념 관련 법안이 그런 사례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李총재가 여야간의 쟁점을 민생보다 차기 대선 전략에서 접근하는 바람에 정국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는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여권의 우려도 많다. 민주당 이해찬(李海瓚)정책위의장은 "한나라당과의 대치가 오래가면 민주당.자민련 의원들이 제각각 캐스팅보트를 쥐려고 한다" 며 "그럴 경우 정치권의 위기 대처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 내치 전환 늦었는가=정치권 일각에선 "金대통령이 6.15 남북 정상회담 성과에 묻혀 내치쪽으로 신속하게 무게중심을 옮기지 못했다" 는 비판이 나온다(한나라당 權哲賢대변인).

고려대 함성득(咸成得.정치학)교수는 "남북관계 진전의 속도를 줄여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줄 대북 접근을 자제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지난달 30일 전직 통일부장관들의 청와대 모임에서 남북관계 진전에서 내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지적이 있었다.

김석준 교수는 "한빛.동방사건이나 선거사범 수사에 있어 여권이 먼저 매를 맞겠다는 내치의 대승적 자세를 가져야 민심과 시장의 신뢰가 살아난다" 고 말했다.

무엇보다 청와대.민주당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위기 감지와 대응이 늦어지고 있다는 자성론이 여권 내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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