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적 본능과 도덕 사이의 갈등 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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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 Books 편집장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장편 〈악마〉(레프 톨스토이 지음, 이나미 옮김, 작가정신 펴냄)는 별난 데가 있는 소설이다. 비교적 짧은 분량인 이 작품은 1889년에 쓰였지만, 1910년 작가 자신이 죽을 때까지 발표하지 않고 미완성인 채로 의자 등받이에 감추어 두었던 작품이다.

톨스토이에게는 대단히 신중했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아마 이 작품에서 자신의 방탕했던 젊은 시절을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특히 육욕(肉慾)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삶과 고뇌, 그리고 절망적인 파국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다. 소설 첫 머리에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을 하였느니라’ 하는 마태복음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부터 심상찮다.

제목 ‘악마’는 바로 음욕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작품 속 주인공 예브게니는 결말 부분에서 자신을 음욕으로 이끌고 있는 여인 스체파니다의 등에 총부리를 겨누고 독백한다.

‘과연 난 정말 내 자신을 지킬 수 없는 걸까? 진짜 나는 파멸할 것인가? 하나님 맙소사! 어떤 신도 없어. 오직 악마만 있을 뿐이야. 바로 그 여자지. 악마가 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다구! 하지만 난 싫어. 싫다니까. 악마. 그래 악마야!’(이 책 144쪽에서)

예브게니는 사회적 성공과 출세를 위한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젊은이였다. 이야기는 예브게니가 고향 영지에서 농장을 경영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고향에 돌아오기 전 도시 생활에서 육체적인 욕구를 매춘을 통해 해결했었는데, 고향에서도 이같은 욕구를 제어하지 못하는 게 화근이다.

그는 고향 마을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육체적 갈망을 해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행위는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을 여자들에 눈길을 돌린다. 예브게니의 욕구는 산지기의 도움으로 마을 뒷 숲에서 유부녀 스체파니다를 만남으로써 해소되기에 이른다.

부적절한 관계가 되풀이되면서 예브게니는 스체파니다에게 ‘왜 남편을 배신하고 바람을 피우는지 묻는다. 그러나 그녀는 거리낌없고 당당한 태도로 “내 생각엔 남편도 분명히 모스크바에서 여자를 만나 바람피울텐데, 난들 뭐가 문제예요.”(이 책 35쪽에서)라고 배실배실 웃으며 대답한다.

예브게니는 스체파니다와의 관계가 내심 좋지 않은 행위라는 가책 때문에 가끔씩 망설임을 보이게도 하지만 ‘어디선가 풍겨오던 신선하고 강한 향기와 걷어올린 앞치마 위로 봉곳 솟아있던 풍만한 젖가슴, 단풍나무와 호두나무가 우거진 밝고 환한 햇살이 가득했던 숲속에서 벌어졌던 장면이 눈에 아른거려’(이 책 34쪽에서)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다.

예브게니가 마을의 요조숙녀인 리자 안넨스카야와 결혼하면서 스체파니다와의 부적절한 관계는 청산된다. 얼마 간 예브게니는 지난 기억을 잊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간다. 농장도 번창하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도 공고해져갔다.

그러던 중 집안의 허드렛일을 처리해줄 일꾼으로 스체파니다가 고용되면서부터 사건은 새로운 국면에 돌입한다. 스체파니다와 우연히 마주친 예브게니는 “그녀의 맨발과 팔과 어깨, 주름진 블라우스와 높이 걷어올린 빨간 치마 밑으로 드러난 하얀 허벅지를 보고 아찔”(이 책 68쪽에서)함을 느낀다. 예브게니에게 예전의 욕정이 살아났고, 스체파니다도 예브게니에게 유혹의 손짓을 던진다.

그러나 예브게니는 욕정에 순종했을 때 다가올 파멸에 대한 생각으로 ‘파멸하는 것보다는 손가락을 태울 각오’(이 책 89쪽에서)를 한다. 그리고는 우선 스체파니다의 가족에 돈을 쥐어주고 멀리 쫓아내보낼 생각까지 하게 된다.

마음가짐과 달리 예브게니는 여전히 스체파니다의 몸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런 자신에 대한 혐오감은 이어진다. 더구나 예브게니의 아내는 임신 중이어서 더더욱 괴로운 마음이 깊어진다.

예브게니는 삼촌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여행을 떠날 결정을 하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는 듯 했으나, 본능의 충동질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침내 그는 결정한다. “그 여자는 악마야. 진짜 악마라구. 그 여자는 내 의지와는 반대로 온통 나를 사로잡고 뒤흔들고 있어. 죽여버려? 그래. 오로지 두 가지 선택밖에 없어. 아내를 죽이든가 그 여자를 죽이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이 마지막 부분의 결말을 톨스토이는 두 가지로 내놓았다. 정신착란에 의한 예브게니의 자살이 그 하나고, 스체파니다를 살해한 뒤 예브게니가 정신착란에 걸려드는 것이 다른 하나다. 두 가지 결말 모두 육욕과 도덕 사이에서 갈등했던 한 남자의 일생이 모두 파멸에 이르는 것이다.

이문열의 소설 〈레테의 연가〉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유부남과의 정사를 앞둔 여자에게 유부남은 “사랑의 윤리가 모든 윤리에 앞선다는 것을 믿는가?”라고 질문을 하고, 여자는 힘없이 “예”라고 답하는 장면 말이다.

젊은 시절을 지독한 방탕아로 보냈다고 스스로〈참회록〉에서 고백한 톨스토이는 소설 〈악마〉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그려냈다고 한다. 요즘 생각으로 보면 촌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으나, 본능과 도덕 사이의 갈등은 어느 시대에나 공통된 갈등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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