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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조 공천이 장난일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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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일
논설위원

4·11 총선의 최대 구경거리는 부산 사상의 문재인-손수조 대결이 아닐까 싶다. 민주통합당(민주당) 대선 주자 중 지지율이 압도적 1위인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으로선 새누리당의 ‘꼬마 후보’와의 승부가 흥미로운 볼거리로 부각되는 게 불쾌할지 모른다. 수퍼 헤비급과 플라이급이 붙는데 무슨 싸움이 되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얼마 전 민주당 문성근(부산 북-강서을) 최고위원은 키 155㎝의 작은 체구에, 나이 27세로 앳되디 앳된 손수조 후보의 도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너무 좀 장난스러운 느낌이 든다. (새누리당이) 어차피 질 테니까 그냥 화제 있는 인물을 찾는 거다”라고. 상대가 안 되는 게임이라고 봤기에 그런 말을 했을 거다. 대진표가 막 확정된 시점에선 문 이사장이 크게 앞서고 있다. 44. 5% 대 25. 1%(중앙일보·엠브레인), 47.2% 대 34.2%(한겨레·한국사회여론연구소)란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듯 지지율 격차가 제법 크다. 현재로선 손 후보가 위협적인 적수가 못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도전을 장난쯤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항마를 찾기 위해 고심해 온 새누리당이 손 후보를 선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문 이사장을 상대로 거물을 붙여 판을 키울 경우 리스크가 크다는 점을 고려한 건 맞다. 당의 간판급을 내세워 큰 승부를 걸었다가 지면 문 이사장 위상만 높여줄 것이라고 염려한 건 사실이다. 홍준표 전 대표(서울 동대문을)가 ‘부산 사상 대전(大戰)’을 희망했으나 당이 묵살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그럼 판을 축소하기 위해 ‘져도 좋다’는 심정으로 손 후보를 고른 걸까. 어제 관훈토론회에서 이 질문을 받은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상상력이 풍부하다.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길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공천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그간 문 이사장을 상대로 누가 잘 싸울 수 있는지를 여러 각도로 검토했다. 여론조사도 수차례 실시했다. 손 후보의 경우 거물급 예비후보보다 인지도·지지도가 낮게 나왔다. 그럼에도 그에겐 확장성이 있다고 당은 평가했다 한다. 이름이 알려질수록 지지율이 오르는 걸 보고 ‘싹수가 있다’고 판단해 공천했다는 게 공직후보자추천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상에선 “손수조가 너무 어리지 않느냐. 참신하다고 해서 찍는 건 아니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하나 선거일까진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손 후보가 하기에 따라 기류는 바뀔 수 있다. 공천신청을 했을 때만 해도 지지율 1∼2%의 미미한 존재였던 그가 공천장을 받고, 지지율을 30% 안팎으로 끌어올린 건 ‘맨발의 선거운동’이 후한 점수를 받은 터여서일 것이다. 스스로 번 돈인 전세금 3000만원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발상, 운전기사·사진사·비서 역할을 하는 남동생을 빼곤 선거운동원을 한 명도 쓰지 않는 용기, 금배지를 거저 줍는 비례대표는 사양한다는 패기 등은 ‘기성 정치인과 다르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민주당 청년비례대표 후보 선발전에 응모한 젊은이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민주당은 선발전 16강에 든 청년들에게 ‘나꼼수’ 진행자였던 정봉주 전 의원(수감 중)에게 보내는 서신을 쓰라고 했다. 그때 한 젊은 여성은 “저의 비키니 사진을 꼭 보내드릴게요. 파이팅!”이라고 적어 빈축을 산 반면 손 후보는 ‘바른 생활’ 이미지를 쌓아 나가고 있다.

 문 이사장은 손 후보 공천 소식에 “신인이 더 무섭다”고 했지만 민주당에선 자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손수조가 약체이니 문재인이 부산·경남의 곳곳을 돌며 우리 후보들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며 마음을 턱 놓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생각대로 문 이사장이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 사상에서의 대결을 ‘남을 자와 떠날 자의 선거’로 규정하는 손 후보는 “문 이사장이 사실상 대선 운동을 한다”며 공세를 취할 것이다. 그게 먹힐 경우 문 이사장의 당선을 장담할 수 있을까. 손 후보가 지는 것과 문 이사장이 지는 건 그 의미와 파장이 참으로 다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