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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길 대장 ‘히말라야 등정 중 떠난 악우들 못 잊어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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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요한 시기, 혹은 뭔가 안 풀리고 답답할 때면 저와 함께하다 유명을 달리한 동료들의 이름을 마치 주문처럼 외웠어요. 8000m 고봉들을 오를 때도 그랬습니다. 결국 그 때마다 어려운 일들이 풀려나갔습니다. 이승에는 없어도 동료들은 늘 제 곁에서 힘과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산악인 엄홍길(52·사진) 대장이 산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내 가슴에 묻은 별』(중앙북스)을 펴냈다.

지난해 안나푸르나에서 새로운 루트 개척에 도전했던 박영석 대장, 엄 대장과 함께 1999년 원정등반에 나섰던 지현옥, 2004년 사고 이듬해 엄 대장이 원정대를 꾸려 시신을 수습한 박무택 등 10여 명의 동료들 대부분이 히말라야 등반 도중 세상을 떠났다.

엄 대장은 이들과 처음 만난 사연, 산을 사랑했던 이들의 면면, 비보를 접할 당시의 절절한 심경 등을 이번 책에 진솔하게 담았다. 특히 고 박영석 대장에 대해서는 자신이 89년 카트만두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던 시절 처음 만난 일, 거듭된 등정 실패로 좌절에 빠진 시절 큰 위로를 받은 일 등을 소개했다. 출간동기를 묻자 그는 “(동료들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며 “생이 너무 짧다”고 말을 이었다.

“짧은 생에서 동료들과 만나 맺은 인연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숨가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2007년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고봉 16좌를 세계 최초로 완등한 이후 그는 지상에 새로운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2008년 출범한 ‘엄홍길휴먼재단’(이사장 이재후)이 바로 그것이다. 재단을 통해 그는 네팔에 현지 청소년을 위한 학교, 일명 ‘휴먼스쿨’을 짓고 있다. 첫 번째 휴먼스쿨은 그가 히말라야 등정에서 잃은 첫 번째 동료, 즉 86년 에베레스트 도전 때 실족사한 셰르파 술딤 도르지의 고향인 팡보체에 세워졌다. 4000m가 넘는 산간오지에 비행기로, 다시 4박5일 육로로 건축자재를 실어오는 난관을 딛고 첫 번째 학교는 착공 1년 만에 완공됐다.

 이후 세 번째 학교가 룸비니에 최근 완성됐다. 지난달 완공식에 다녀오는 길에 그는 안나푸르나 초입의 산간마을에 네 번째 학교 후보지를 정하고 왔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주)밀레가 학교건립을 돕기로 했다.

“안나푸르나는 제게 가장 많은 시련을 준 산입니다. 네 번 실패하고 99년 다섯 번째에 등정했지요. 그런데 지난해 여기서 또 엄청난 사건이 터졌으니….” 그는 후배격인 고 박영석 대장을 두고 “선후배를 떠나 형제 같이, 악우(岳友·산악인)의 정신으로 도전했었다”고 돌이켰다.

 엄 대장의 목표는 네팔에 모두 16개의 학교를 짓는 것이다. “히말라야는 저에게 16번의 성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걸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어요.”

 이번 책의 수익은 모두 휴먼재단에 기부돼 학교짓기 등에 쓰이게 된다. 그는 “히말라야 등 해외 등정 도중 세상을 떠난 악우들의 유자녀를 재단에서 선발해 지속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사업도 올해부터 시작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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