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금융권 CEO 승계, 시스템화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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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하나금융의 승계 작업이 순조롭게 이뤄져 다행이다. 김승유 회장은 국내 금융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사실 그동안 하나금융과 김 회장에 대한 우려가 높았던 건 사실이다. 2010년 신한금융 사태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라는 우려다. 이는 김 회장이 신한의 라응찬 전 회장과 더불어 국내 최장수 금융경영자였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김 회장의 진퇴 여부가 큰 관심사였을까. 김 회장이 라 전 회장처럼 노욕(老慾)을 부릴 경우 신한 사태가 재발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었다. 이렇게 되면 십중팔구 관치 바람에 휘둘리게 된다. 2009년 경영진 내분으로 정치 바람을 타면서 낙하산 인사로 마무리됐던 KB금융 사태의 재연이다. 당연히 낙후된 한국 금융은 치명상을 입게 된다. 외풍에 휘둘리는 금융이 어떻게 초일류 금융사로 도약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김 회장은 이런 우려를 일거에 불식시켰다.

  하나금융은 1년여 전에 승계 계획을 만들었다. 이사회가 CEO 후보들을 육성하고 이 중 한 명이 승계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도 하마터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뻔했다. 이 때문에 퇴임을 불과 몇 달 앞두고 후계자를 선정하느라 분주했다. 외부 영입설도 있었고, 내부 인사 중에서도 후계자로 거론되던 경영자가 퇴진하는 등 혼선이 빚어졌다. 앞으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승계가 되도록 후계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돼야 한다. 물론 이는 하나금융만의 일은 아니다. 다른 금융지주들도 똑같이 해당되는 일이다. 그래야만 금융계가 원하던 ‘금융의 삼성전자화’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내년부터 거세게 몰아 닥칠 정치와 관치 바람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당장 금융지주의 CEO 자리가 논공행상용으로 전락하기 쉽다. 이번 정부에서도 5대 금융지주 회장 중 3명이 정권과 가까운 인사로 채워진 것만 봐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승계 프로그램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금융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국내 금융이 낙후된 데는 CEO들이 자기 임기 중 성과 날 만한 것만 추진하는,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전략과 비전을 가졌기 때문이 크다. 하지만 예측가능한 승계가 이뤄진다면 이런 폐단을 탈피할 수 있다. 전임 CEO의 전략을 후계자가 이어받아 추진하기 때문이다. 사실 CEO의 임무 중 가장 중요한 게 후계자 육성이다. 물론 이는 경영의 기본이기도 하다. 전설적인 투자자인 버핏이 왜 4명의 후계자를 진작 정해놓고 계속 테스트하고 있겠는가. 후계자가 잘해야 계속 기업이 발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금융계는 그동안 그러지 않았다. 후계자를 키우긴커녕 싹을 자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다 보니 정치와 관치 바람에 휘둘렸다. 경영과 CEO의 기본 임무를 망각한 탓이다. 이런 행태에서 벗어나야 우리도 초일류 금융사를 가질 수 있다. 이게 승계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돼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