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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진짜 주인은 안동 광흥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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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광흥사 범종 스님이 응진전(應眞殿)에서 불복장 유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훈민정음 해례본이 16나한 중 책을 든 시자가 있는 나한상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측한다”고 말했다. [안동=프리랜서 공정식]

대한불교 조계종 안동 광흥사(廣興寺)는 최근 신자들과 함께 3000배 기도법회를 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기 위한 기도다.

 좀 생뚱맞아 보이지만 검찰과 법원이 경북 상주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제2 해례본(상주본)의 주인을 광흥사로 인정한 게 계기가 됐다. 문화재 전문 절도범 서모(51)씨가 1999년께 광흥사 나한상 배 속에서 해례본을 몰래 꺼내 상주 골동품상에 넘겼고 그게 다시 2008년 배익기(49·구속)씨의 손에 들어가 공개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이 같은 서씨의 법정 증언이 나온 이후 광흥사는 방청석에서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상주본 되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광흥사를 찾았을 때 주지 범종 스님은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금사경(金寫經) 사진을 먼저 보여줬다. 이른바 불교 계율을 기록한 범망경(梵網經)인데 서씨가 훔쳐갔던 불복장(佛腹藏) 유물 중 돌려받은 것이다. 불복장은 불상을 세울 때 불상 몸 안에 넣는 물건이다. 범망경 실물은 도난을 막기 위해 다른 박물관에 위탁 보관했다고 한다. 의상대사가 지었다는 광흥사는 목판 등으로 경북지역 인쇄의 거점 역할을 한 사찰로 전해진다. 사찰 대부분은 몇 차례 화재로 소실되고 지금은 암자만 남아 있다.

 범종 스님은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왔다는 나한상이 있는 응진전(應眞殿)으로 안내했다. 시자(侍者·시중 드는 승려) 1명씩이 붙은 16나한이 응진전을 둘러 가며 배치돼 있었다. 광흥사 나한상은 크기가 사람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게 특징이다.

 “국내 최대의 나한상입니다. 아마 시자가 책을 든 저 나한상에서 해례본이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범종 스님은 서씨가 나한상을 두 차례 터는 등 이곳은 모두 세 차례 변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스님 한 사람밖에 없는 무방비 산중에서 벌어진 도난이다.

 서지학자들은 해례본이 불복장 유물이라는 데 부정적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불교와 관련성이 없는 데다 돌려받은 범망경(고려 말 추정)과 시기도 일치하지 않아서다.

 범종 스님은 “그런 주장은 고정관념일 뿐”이라며 “불교와 관련성이 없는 물건이라도 얼마든지 불상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금반지·오곡 등이 들어가고 요즘은 불상을 조성할 때 콤팩트 디스크(CD) 등도 들어간다.

 그는 또 “광흥사와 경북 영주 희방사에 훈민정음 해례본 목판본이 있었다는 말도 전해진다”며 “국보 제70호로 지정된 해례본 간송본이 안동에서 발견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해례본은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게 최우선입니다. 반환 기도법회도 그런 차원입니다. 실물은 자취를 감췄는데…. 아직 소유권을 주장할 단계는 아니지 않습니까.” 범종 스님은 앞으로 항소심 재판을 지켜보며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할 계획이다.

 한편 해례본을 훔치고 숨긴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받은 배씨는 다시 항소한 상태다.

안동=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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