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생각만큼 작은 것이 아름답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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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작은 것은 아름답지 않다(Small is not beautiful)’.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3월 3일자·사진)는 영국 경제학자 슈마허의 책 제목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를 뒤집은 듯한 이런 제목의 기사에서 ‘왜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중소기업이 훌륭하지 않은지’를 설명했다. 선거를 앞두고 ‘대기업 배싱(bashing·때리기)’ 열풍이 뜨거운 한국이 참고할 만한 내용이지만 기사는 주로 유럽 얘기다. 이에 따르면 성장이 정체돼 있는 유로존 남쪽의 그리스·이탈리아·포르투갈은 성가신 규제 탓에 소기업이 많다. 이들 국가에서 종업원 수 250명 이상의 대기업이 전체 제조업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유로존 경제강국 독일의 절반을 밑돈다. 대기업이 부족한 탓에 생산성과 경쟁력도 떨어졌다. 이는 유로존 위기의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대기업이 많은 경제여야 높은 생활수준을 영위할 수 있다. 잡지는 “중요한 것은 기업의 크기가 아니라 성장(Size doesn’t matter. Growth does)”이라고 결론 내렸다.

 잡지는 또 관련 기사인 ‘작은 것의 몰락(Decline and small)’에서 남유럽의 소기업 문제를 조명했다. 특히 그리스는 종업원 수 10명 미만의 소규모 제조업이 전체의 3분의 1이다. 이런 소기업, 독일은 단지 4.3%뿐이다. 잡지는 “중소기업 편애는 (생산성 측면에서)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생산성이 떨어지는 건 고용·제품시장에 대한 엄격한 규제 탓이며, 이런 규제는 자본과 인력이라는 사회의 자원을 비효율적인 기업에 묶어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랫동안 사업을 해온 성숙한(mature) 중소기업은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한 신생기업과 마찬가지로 일자리를 파괴한다”며 “작은 것보다 젊은 신생기업이 더 좋다”고 했다. 다음은 기사의 주요 내용.

 기업 크기가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일단 비호감이 되기 쉽다. 월마트와 테스코 같은 대형 유통업체는 납품업체를 쥐어짜고 중소 경쟁업체를 궤멸시킨다. 영화 속의 대기업은 언제나 사악하게 그려진다. 정치인들이 대기업 대신 중소기업을 칭송하는 건 그래서 별로 놀랍지 않다. 작은 것의 옹호는 약삭빠른(shrewd) 정치다. 우상(fetish) 숭배하듯 중소기업을 치켜세우면 인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경제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가 된다. 대기업은 일반적으로 더 생산성이 높고 세금도 많이 낸다. 소기업이 지배하는 나라는 경기침체에 자주 빠진다.

 대기업의 장점은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에 있다. 더 적은 현금과 노동을 투입해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악명 높은(villainous) 월마트 같은 대형 유통업체는 골목상권 점포(corner store)보다 더 다양하고 고품질의 제품을 더 낮은 가격에 공급한다. 규모가 있어야 전문화를 할 수 있고, 그래야 혁신도 나온다. 물론 대기업도 단점이 있다. 고객 니즈나 취향의 변화, 신기술에 속도감 있게 반응하기 어렵다.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대기업은 종종 관료적이고 비효율적이다. 대기업을 우상화하는 건 소기업을 우상화하는 것만큼 현명하지 못하다.

 정책 당국자는 기업의 크기에 신경 쓸 게 아니라 성장(growth)을 지향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사랑받는 건 대기업보다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그냥 중소기업이 아니라 전적으로 신생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에 보조금을 퍼주고, 보호하는 규제를 만드는 대신 정부는 성장의 장애물을 없애는 데 집중해야 한다.

한국의 중소기업은

중소기업기본법이 정하는 중소기업은 업종별로 규모 기준이 다르다. 제조업의 경우 상시 근로자 300명 미만 또는 자본금 80억원 이하여야 한다. 전체 사업체 중 99%가 중소기업이고 근로자의 88%가 중소기업에 종사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종업원 수 250명 이상을 대기업으로 분류해 한국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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