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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제발 좀 잘해라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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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호 02면

중앙SUNDAY는 얼마 전 민주통합당 문성근 최고위원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의 공과가 뭐냐”고 물었다. 문 최고위원은 “참 어려운 질문”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 주시고, 남북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경제정책이 서민의 삶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런 것들을 빠른 시간 안에 가르쳐주신 게 가장 큰 공이 아닐까?” 지독한 비아냥이다. 하지만 문 최고위원만 그런 게 아니다. 이른바 진보진영은 그런 정서와 평가를 광범하게 공유하는 것 같다.
나는 물론 그런 일방적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노무현 때문”이라는 식의 조롱이 상당히 광범하게 퍼져 있었다. 치졸하고 비이성적인 ‘이지메’ 정서다. 요즘 보는 건 아마 그 ‘좌파 버전’일 것이다. 좌파 쪽은 “우파도 그랬으니 이제 당해봐라”는 심정일지도 모르겠다. 이해는 가지만, 참 씁쓸한 비극의 악순환이다.

김종혁의 세상탐사

우파 인사들은 이명박 정부에 쌍심지를 돋운다. “대선에서 500만 표 이상의 표차로 압승하고 국회에서도 절대 다수 의석을 확보해 놓고 왜 이 모양 이 꼴이 됐느냐”고. 나는 정반대로, 바로 그래서 이 꼴이 됐다고 생각한다. 만일 대선에서 박빙의 승부로 가까스로 이겼다면 대운하를 그런 식으로 밀어붙였을까. 인사를 그렇게 막 했을까. 만일 4년 전 총선에서 야당과 팽팽했더라면 총선 후 이명박계, 박근혜계로 갈려 우군끼리 대놓고 총질을 벌였을까. 아마 못 그랬을 것이다. 매사 조심조심 국민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신하게 처신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진심으로 오는 4·11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의 선전을 기원한다. 국가는 3권 분립이 잘될 때 튼튼해진다. 정치 역시 여야가 엇비슷한 힘을 나눠 가지고 견제와 균형을 하는 게 좋다고 본다.

그런데 요즘 민주통합당과 진보진영이 하는 걸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저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속으론 고소해하면서 겉으로만 슬픈 척하는 ‘악어의 눈물’이 아니다. 진심으로 걱정된다. 지금 진보진영은 잠깐 ‘반짝’ 하더니 가라앉을 기세다. 사실은 그 반짝 인기도 불로소득이었다. 상대편이 밉다 보니 ‘혹시나’ 해서 민심이 반대쪽으로 쏠린 거다. 사정이 이런데도 진보진영은 4년 전 보수진영이 했던 기고만장의 전철을 다시 밟는 듯하다.

요새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하는 걸 보면 그냥 어이가 없다.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겠다. 인사가 잘못됐다고 모두 아우성인데 온갖 명분을 둘러대며 정당화한다. 미안한 표현이지만 좀 역겹다. 그런 게 진보의 정의고 도덕인가. 민주통합당의 모바일 선거 잡음에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옛날에 당원들 버스에 태워 끌고 오던, 사실상 매표에 가깝던 구태(舊態)의 최신 버전이다. 그러면서 입으론 소통과 참여란다. 낯이 뜨거워진다.

진보진영에 몇 가지 바라는 게 있다. 첫째, 이젠 실력을 보여달라. 선동 실력이 있다는 건 안다.(비아냥이 아니다. 그것도 실력 맞다.) 하지만 그건 야당 때다. 앞으로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고, 연말엔 집권 가능성도 생겼으니 이젠 개혁과 소통능력, 비전과 통치력 같은 걸 보여달라. 남을 손가락질 했으면 자신의 일처리 방식은 어떻게 다른지 보여줘야 할 게 아닌가. 둘째, 상식에 맞게 행동해 달라. 대한민국이 전 세계 인권의 최후진국인 것처럼 거품을 물면서 어째서 북한 동포의 그 처참한 삶은 외면하는가. 또 당 지도부가 무더기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해 달라며 미국 대사관에 몰려가는 걸 보며 일반 국민이 얼마나 황당한지 알긴 아는가. 셋째, 부정이 아니라 긍정의 정치를 해달라. 거대 여당에 터무니없이 몰릴 때 소수 야당의 ‘네거티브’는 몸부림이었다고 치자. 하지만 이제는 국민적 지지에 합당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언제까지 ‘나꼼수’ 같은 B급 정서에 기대어 버티려는가. 그래서 집권이 된다고 생각하나.

진보진영에는 올해가 정말 중요하다. 한동안 폐족 소리까지 듣지 않았나. 한참 헤매다 겨우 제자리 찾아가고 있는데 여기서 다시 실망시키면 장담컨대 앞으로 진보, 한참 어려울 것이다. 건강한 진보가 있어야 좋은 보수도 나온다. 그러니 진보 힘내라. 제발 좀 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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