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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보다 게이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60호 30면

최근에 아이폰을 구입했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걸 좋아하게 됐다. 왜 진작 사지 않았나 싶다. 사실은 이유가 있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너 언제 21세기 사람이 될래’ 하고 징징대는 바람에 심술이 나서 석기시대 유물 같은 옛날 전화기에 매달린 것이다.

전화기이자 카메라고, 컴퓨터이면서 페이스북 업데이트를 가능하게 하는, 유아독존적인 이 기계가 영리하다는 건 인정하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 기계를 만든 사람을 너무 떠받드는 것 같다. 요즘 어딜 가든 ‘성자(聖者)’ 스티브 잡스의 흑백사진을 보게 된다. 세상을 바꾸고 재빨리 세상을 떠난 천재. 그의 자서전은 해리포터만큼 팔린다. 후렴구는 항상 똑같다. 그가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부자 나라의 젊은이들을 위해 멋진 기계들을 많이 만들어냈다. 그는 고급 취향을 가졌고 제품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그런 면에서 빌 게이츠와 다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건 빌 게이츠가 세계 수십억 가난한 사람들의 의료 혜택을 위해 자기 재산의 대부분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빌 게이츠의 제품은 우아하지 않다. 그러나 실용적 영향력과 도덕적 품성을 따진다면 빌 게이츠가 한참 앞이다.

잡스의 성격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엉뚱한 야망을 품게 한다. “요즘 CEO들은 잡스처럼 되려면 동업자와 종업원들을 무신경하고, 무관심하고, 불쾌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와 친한 벤처 사업가의 말이다. 잡스는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그건 올바른 일처리 방식이 아니다.

잡스는 이기심 가득한 우리 시대의 ‘아바타’이다. 그는 조직을 능가하는 창조적 리더의 승리를 상징한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다. 항상 i로 시작하는 그의 제품들 또한 개인주의적이다. 그리고 그 비싼 가격을 생각하면 엘리트적이다.

잡스는 세계적 성공 신화다. 요즘은 자기 나라에서 존경받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글로벌해져야 한다. 단순한 글로벌이 아니라 잡스처럼 글로벌 리더가 돼야 한다. 남들과 함께 가는 게 아니라 세상에 홀로 나가 지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앞장서 도전하고 승리하고, 남들 위에 올라서야 한다.

수출지향적인 특성 때문에 다른 나라보다 더 세계화에 적응한 한국 같은 나라에선 글로벌 리더의 이미지는 매력적이다. 대학의 광고를 보자. 만일 글로벌 리더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나에게 만원을 준다면 나는 아마도 i자 형태로 된 수영장을 채우고 넘칠 만큼의 i패드를 살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어떤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그녀의 학원에선 학생들에게 국제사회에서 리더가 되는 법을 가르친다. 그런데 수업이 끝나면 아무도 어질러 놓은 걸 정리하지 않고 불도 끄지 않고 떠나버린다. 다들 글로벌 리더가 되고 싶다면서 말이다.

외국 언론이 한국의 K팝에 대해 보도하면 한국 언론은 마치 K팝이 세계를 점령한 것처럼 흥분한다. 나는 최근에 가수 신중현과 인터뷰를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했다. 물론 신중현은 팝은 아니다. 내가 보기엔 그는 팝보다 더 나은, 뛰어난 자질을 가진 진정한 음악인이다. 전 세계 수많은 기타광이 그를 존경한다. 기타 제작사 펜더는 그에게 맞춤 기타를 선사하기도 했다.
요즘 직접 작곡하고 연주하는 사람들은 인기가 별로 없다. 그래서 인디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가 다음달 캐나다와 미국 주요 도시에서 횡단 투어를 한다는 걸 알리고 싶다. 크라잉 넛과 함께 가는 그들은 한국의 록음악을 널리 알릴 것이다. 나는 외국인들도 그들을 몇 번 보면 반드시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면 ‘3호선 버터플라이’ 같은 밴드들이 전 세계에 ‘인디 한류’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믿는다.



다니엘 튜더 옥스퍼드대에서 철학·경제학을 전공한 후 맨체스터대에서 MBA를 땄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처음 방한했으며 지난해 6월부터 서울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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