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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망토의 카이사르, 알레시아 대승 이끌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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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호 11면

말을 탄 베르킨게토릭스(왼쪽)가 카이사르를 찾아가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고 있다. 1899년 리오넬-노엘 루와이예가 그린 그림이다.

“누구에게나 모든 게 다 보이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것밖에는 보지 않는다.” 카이사르의 유명한 말이다.
몽테스키외는 그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카이사르는 행운을 타고났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 비범한 인물이 뛰어난 자질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결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그는 어떤 군대를 지휘했어도 승리자가 됐을 것이고,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도 지도자가 됐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음의 다섯 가지다. 지성, 설득력, 지구력, 자제력, 지속적인 의지. 카이사르만이 이 모든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다.” 역사에는 수많은 영웅과 위인이 있지만 카이사르만큼 고른 평가를 받고 있는 이도 드물 것이다. 그가 치렀던 여러 전쟁 중 알레시아(Alesia) 공방전 하나만 보더라도 왜 이런 평가가 나왔는지 알 수 있다.

손자병법으로 푸는 세상만사 <17> 리더의 자리

7년간 지속된 갈리아 전쟁은 기원전 52년 9월의 알레시아 공방전에서 사실상 끝났다. 이 공방전은 카이사르의 5만 병력이 베르킨게토릭스가 중심이 된 8만의 농성군과 26만의 지원군을 상대로 승리한 전투다. 카이사르의 천재적 군사능력이 발휘된 전투이자 전사(戰史)상 전대미문의 이중포위망 구축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이 이야기는 카이사르가 저술한 갈리아 전쟁기 제7권에 나오며,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11권 중 4, 5권 카이사르 편에서 다루고 있다.

알레시아는 현재의 프랑스 중부 디종과 오를레앙을 잇는 선상에서 디종에 좀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구릉지대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53년과 기원전 52년의 겨울 동안 이탈리아 북부에 머물면서 속주를 통치하고 있었다. 이때 갈리아 아르베니족의 새로운 족장으로 추대된 젊은 베르킨게토릭스는 ‘로마에 맞서 갈리아 부족 전체가 총궐기해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고 호소하며 세력을 규합했다.

성벽 두 겹으로 쌓는 이중포위망 전략
반란의 소식을 들은 카이사르는 곧바로 알프스를 넘어 갈리아로 들어가 반란군 축출에 나섰다. 기원전 52년 여름, 베르킨게토릭스는 8만 명을 이끌고 알레시아 요새로 철수해 농성전을 준비하는 한편 모든 갈리아 부족에 연락해 알레시아로 집결하게 했다. 카이사르는 즉각 알레시아 요새를 둘러싸는 포위망을 구축했는데 매우 특이하게 두 개의 성벽으로 구축했다. <작은 그림 참조>

첫 번째 성벽(내벽)은 농성군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고, 두 번째 성벽(외벽)은 바깥에서 오는 지원군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두 성벽 사이의 120m 중간지대에 로마군이 위치했다. 어느 역사학자는 이 포위망을 두고 ‘전쟁 역사상 가장 현명한 포위공격 책략’이라고 평했다. 갈리아 기병들은 50개의 부족에서 25만의 보병과 8000여 기의 기병을 모았다.

이들은 기원전 52년 9월 20일 알레시아가 눈앞에 보이는 지점에 도착했다. 이제 카이사르는 5만의 병력으로 안팎을 합쳐 34만에 달하는 적과 싸우게 됐다. 처음 전투는 기병전이었다. 로마군의 기병은 규모 면에서 불리했으나 용감히 싸워 갈리아 기병을 물리쳤고, 이들에 호응해 성 밖으로 나온 농성군의 일부 보병도 카이사르의 안쪽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다시 요새로 물러났다.

다음 날 바깥의 갈리아군은 공성기구를 보강해 밤을 틈타 공격했지만 로마군의 강력한 포위망을 뚫는 데 실패하고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물러났다. 이때도 요새 안에서 농성군이 호응했지만 포위망을 뚫지 못했다. 전투가 벌어질 때면 카이사르는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나타났고, 그가 모든 곳에서 다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10월 2일, 갈리아군은 로마군의 약점을 발견했다. 북쪽 성벽이 허술하게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갈리아군은 베르킨게토릭스의 사촌인 베르카시베라우누스에게 6만을 주어 그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게 했고, 정오에는 세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이고 파상적인 총공격을 감행했다. 이때 카이사르는 높은 망루에 올라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모든 사람이 보이도록 지휘했고, 부장 라비에누스를 북쪽의 약한 성벽으로 보내 공격을 막게 했다.

갈리아군의 총공세에 포위망의 몇 군데가 뚫렸지만 그때마다 카이사르가 시의적절하게 지원군을 보내 막을 수 있었다, 갈리아군의 한쪽 측면에서 약점을 발견한 카이사르는 직접 기병대와 보병대를 이끌고 성벽 밖으로 나가 그들의 측면을 공격해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북쪽 성벽의 갈리아군은 괴멸했고 베르카시베라우누스는 생포됐다. 기대했던 북쪽 전선이 패하자 바깥으로 나왔던 갈리아군은 다시 요새 안으로 들어갔고, 포위했던 갈리아 지원군도 퇴각하기 시작했다.

냉정한 카이사르였지만 이때만은 흥분해 이렇게 말했다. “만약 아군 병사들이 격투의 연속으로 기진맥진해 있지만 않았다면 적군 전체를 완전히 섬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전투에서 로마군은 1만2800명이 전사한 반면 갈리아군은 괴멸에 가까웠다. 5만도 안 되는 병력이 34만이나 되는 적을 괴멸시킨 것이다. 그것도 앞뒤 양쪽의 적을 상대해서였다. 이런 승리는 전쟁 사상 처음이다. 이튿날 베르킨게토릭스는 말을 타고 카이사르를 찾아와 무릎을 꿇었다.

카이사르의 리더십은 여러 각도에서 조명되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공명을 위해 부하들의 희생을 원하지 않았던 리더였다.

그는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피 흘리는 전투를 자제했다. 위기 시에 리더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말해준다. 전세가 불리할 때는 보병 방패를 직접 들고 나가 칼을 휘두르기도 했고, 백인대장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그들의 사기를 북돋워주기도 했다. 붉은 총사령관 망토를 걸친 카이사르가 최전선을 누비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불리한 상황이지만 그의 군단이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가 없는 전쟁터에서도 부하들은 “총사령관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구호를 외치면서 스스로 전의를 북돋웠다.

자신의 말 매어두는 방마매륜의 혜안

손자병법 화공(火攻) 제12편에 보면 군사를 부리는 리더가 명심해야 할 중요한 말이 나온다. ‘유리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非利不動). 승리를 얻을 만하지 않으면 군사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非得不用). 위태롭지 않으면 싸우지 말아야 한다(非危不戰)’. ‘비리부동, 비득불용, 비위부전’. 이 세 가지는 군대를 부리는 절대원칙으로, 영욕을 위해 불필요한 희생을 원치 않았던 카이사르의 군대 운용 기준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손자병법 구지(九地) 제11편에 보면 주목할 어구가 나온다. ‘결사의 태세를 위해 말을 묶어놓고 수레바퀴를 땅에 묻더라도(方馬埋輪) 아직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未足恃也)’. 이 말은 물리적으로 도망갈 길을 없애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개인의 마음 속에 결사의 태세가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항우가 행했던 파부침주(破釜沈舟)와 맥을 같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리적 조치 외에 지휘관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리더는 결코 그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카이사르가 전투 중에 행하는 두드러진 행동이 있었는데, 그가 말에서 내려 말을 어느 한 곳에 매어두는 일이다. 그러면 휘하의 모든 장교도 그들의 말을 그곳에 매어둔다. 어떤 위기에서도 생사를 함께하겠다고 하는 일종의 예식이다. 손자가 말하는 ‘방마매륜’이다. 카이사르가 전례 없이 과감하게 양방향의 성벽을 쌓은 것에도 방마매륜의 깊은 속셈이 숨어 있다. 120m 폭의 좁은 공간에 함께 있으면서 양방향의 적에게 완전히 포위된 느낌을 공유하며, 서로를 의지하고,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생각도 갖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과연 카이사르의 혜안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리더도 그 죽음의 가두리 안에 함께 있다는 것이다. 부하들을 사지(死地)에 던져놓고 자신은 바깥에서 구경하는 리더가 있다면 그것은 방마매륜이 아니다.

손자병법 허실(虛實) 제6편에 보면 부대를 배치할 때의 유의점에 대해 나온다. ‘모든 곳을 다 막으려고 한다면 모든 곳에서 병력이 부족하지 않은 곳이 없다(無所不備 則無所不寡)’. 제한된 병력으로 부대를 배치할 때는 모든 곳을 다 막으려고 욕심 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 리더는 제한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집중과 선택의 원칙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비워야 할 곳은 비워두되 무방비로 두지 말고 병력을 대체할 만한 장애물 등의 수단으로 단단히 조치해야 한다.

카이사르의 이중 포위망에서는 북쪽 성벽이 취약했다. 그곳 레아 산의 경사면이 고르지 않아 성벽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카이사르는 여기에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설마 했던 것이다. 허점은 적이 먼저 아는 법, 과연 그곳을 노려 집중 공격한 갈리아군에 밀려 로마군은 무척 고전했다. 카이사르의 초인적 진두 지휘가 아니었다면 로마군은 오히려 참패할 수도 있었다. 지키는 것도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결정적 허점을 방치하지 마라. 그리고 방심은 언제나 금물이다.

손자가 말한다. 세상의 리더들이여, 지금 어려움에 부닥쳤는가? 카이사르의 붉은 망토를 날려라. 단번에 눈에 띄는 망토는 무수한 화살의 표적이 될 것이다. 그저 주목받고 자기 자신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면 된다. 축 처진 어깨의 부하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위기 시에 리더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려 한다면 어찌 화살받이가 되는 것을 마다하겠는가. 지금 이 시대는 용기 있는 리더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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