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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향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60호 04면

향수라는 뜻의 ‘노스탤지어(nostalgia)’는 귀향을 뜻하는 그리스어 ‘nostos’와 고통스러운 상태를 의미하는 ‘algia’를 합친 말이라고 합니다. 고향으로 너무나 가고 싶어 심신이 병든 상태를 일러 향수병이라고 하지요.

어디 물리적 공간뿐이겠습니까. 나이 든 사람은 물론 젊은이들에게도 ‘좋았던 옛날’에 대한 반추는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마취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향수 비즈니스’가 성업을 이루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죠.

이번 아카데미 영화제를 휩쓴 영화 ‘아티스트’ 역시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흑백 무성영화 스타일로 세간의 의표를 찌른 이 작품이 시작되는 배경은 1927년. 대공황 직전 흥청망청 풍요의 극치였던 미국 사회입니다. 모두가 즐거웠고 모두가 부자였던 그 시절로 돌아간 객석은 ‘지나간 좋은 것들(oldies but goodies)’에 푹 빠져듭니다. 예복과 구두까지 전당포에 넘기게 된 형편이지만 팁은 빼놓지 않는 한물간 배우의 호기로움도, 그런 배우를 우렁각시처럼 돕는 당대 최고 인기 여배우의 순정도, 늘 곁에서 주인을 지키는 강아지와 노집사의 충직함도 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도 사람들은 한동안 일어서지 않았습니다. 힐끗 둘러보니 어르신 관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 시절이 새삼 그리워져서였을까요. ‘그때 그 시절’에서 벗어나기 싫은 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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