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하를 재즈로 만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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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의도치 않은 곳에서, 생각지 못한 사람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다. 첫 재즈앨범 ‘마이 송 마이 재즈(My Song My Jazz)’을 낸 가수 이은하(51·사진)씨가 그렇다.

 허스키한 샤우팅 창법으로 1970~80년대를 풍미한 이씨가 재즈 걸음마를 뗐다. 최근 발매된 이 앨범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이씨의 신곡, 팝과 재즈의 스탠더드 넘버(수많은 연주가에 의해 애창되거나 연주돼온 곡)들, 그리고 이씨의 과거 히트곡을 재즈로 새롭게 선보였다.

 1번 트랙은 전세계 600명이 넘는 가수가 부른, 재즈의 대표적인 스탠더드 넘버 ‘마이 퍼니 발렌타인(My Funny Valentine)’이다. 이 노래를 듣고 이씨를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절제된 소리, 한없이 내려가는 저음으로 자신만의 ‘마이 퍼니 발렌타인’을 그려냈다. 이씨의 히트곡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또한 원곡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로 재탄생했다. 리듬과 여백의 미가 극대화됐다. 그는 지난달 22일 앨범 발매 쇼케이스에서 “재즈를 처음 시도하며 가장 어려웠던 건 절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백미는 5번 트랙 ‘내 노래’다. ‘돌아보면 아쉬운 시절 후회도 많았지만 언제나 흐르던 내 노래 안에선 행복했죠/다시 또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대도 그 노래를 따라와 나 지금 이 곳에 서 있겠죠….’ 피아노·퍼커션·트럼펫 등이 어우러지는 반주 위에 읊조리는 가사는 이씨의 음악 인생을 떠올리게 한다.

 이씨는 1973년 ‘님 마중’이란 곡으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데뷔 40년차. ‘밤차’ ‘아리송해’ 등으로 큰 인기를 누렸지만, 2007년 15년의 공백을 깨고 복귀했을 때 대중의 외면이란 쓴맛도 봤다. 그럼에도 ‘내 노래 안에선 행복했다’고 고백한다.

 이번 앨범은 재즈 평론가 남무성씨가 프로듀싱을 맡고 이정식·이주한·양준호 등 베테랑 재즈 연주자와 젊은 뮤지션이 대거 참여했다. 음반의 최대 강점은 ‘친숙한 듯 새로움’. 친숙한 노래들이 새롭게 다가오지만, 결코 강요하지 않는 미덕이 있다. 화려한 스캣(scat·‘다다다다다’ 등 무의미한 음절로 가사를 대신해 리드미컬하게 흥얼거리는 것) 등을 사용해 ‘나 재즈요’라고 주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연스럽게 스윙을 타면서 재즈를 그린다. 신곡이 ‘내 노래’ ‘내일도 어제처럼’ 단 두 곡에 그친 점은 아쉽다. 하지만 재즈 첫 발걸음을 성공적으로 뗀 듯 하다.

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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