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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마술의 언어 '만화예술론'

중앙일보

입력

만화는 이미지의 가장 낡고 오래된 마법(魔法)과, 21세기 영상언어의 주술(呪術), 그 양쪽을 하나의 축으로 관통하는 힘 있고 신비한 마술의 언어다.

만화적 아이콘(icon) 곧 카툰은 뜻 그림, 의미가 담긴 그림이다. 스토리 만화는 연속된 그림이다. 만화가 우리를 사로잡는 뜻 그림, 이야기 그림으로서의 마술 때문이다.

죽음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마법이고 아니마(anima)라면, 모든 이야기, 모든 형상의 핵심은 마법이다. 형상과 이야기는 하나로 합쳐지고 서로 작용함으로써만 생명을 얻는다. 이것이 세계의 비밀이자, 모든 종교, 모든 문화예술의 비밀이다.

단지 정신적·상징문화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다. 실용문화적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계몽주의 시대 이래로 말과 그림의 결합은 지식의 전달이나 기술의 습득에서도 대단히 효율적임이 증명되었다.

만화는 인쇄된 지면 위에 칸·페이지 디자인·이야기라는 세가지 요소의 배합으로 매우 독특한 시간과 공간의 연속체를 만들어낸다. 만화 읽기의 쾌락은 칸·페이지·이야기를 통합하고 분절하는 작가의 시각 장치 운용 능력과 서사 기술에서 나온다.

특히 중요한 것은 칸과 칸 사이의 관계다. 칸의 구성은 이야기의 구성이자 시간의 흐름의 공간적 구성이기도 하고 그림의 구성이기도 하다.

하나의 칸과 다음 칸 사이의 이 틈에서 행위의 혹은 장면의 상호 관련을 포착하고 음미하면서 하나의 사건이나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것은 만화를 읽는 독자의 상상력이다.

만화는 독자를 칸과 칸 사이의 '도랑'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면서 독자의 상상력에 가속도를 붙인다. 독자가 적극적으로 매체의 동맹자가 되는 것, 독자의 연상이 변화와 시간과 동작의 중개자가 되는 것은 만화 읽기의 매우 중요한 특성이다.

독자라는 주체의 이같은 적극적 역할은 아이콘이나 캐릭터의 카툰적 특성 곧 핵심을 살린 약화식 그림이 우리를 사로 잡는 매혹의 이유와도 상통한다. 만화적 아이콘이나 캐릭터는 독자를 자기동일시로 강력하게 이끈다. 주인공 속에 자기투사를 하게 한다는 것이다.

카툰의 세계에서 우린 구경꾼이 아니라 주체가 된다. 만화는 우리의 감관을 확장하여 이 세계와 일체감을 느끼게 하는 언어다. 마치 우리가 운전할 때 차의 기어라든가 운전대, 백미러 등이 우리 몸의 연장이 되어 우리가 차와 일체감을 이루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만화를 읽는다는 것은 독자들이 카툰화된 주인공 속에 몸을 숨기고 감각을 자극하는 세계로 안전하게 들어가는 것이며 그 속에서 마음껏 모험을 펼친다는 것이다. 이처럼 독자와 일체감을 느끼는 것이 카툰의 최대 강점이기 때문에 카툰은 전세계의 대중문화를 파고들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다.

만화의 칸의 구성에는 대체적인 컨벤션(관습)이 있지만 자유롭고 새로운 형식의 구사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페이지 전체의 시각적 구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만화를 읽을 때 독자의 시선은 한 칸에서 다음 칸으로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다.

만화는 한쪽 페이지 전체,혹은 양쪽 페이지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파놉티콘(panopticon:한 곳에서 내부가 전부 보이는 원형 교도소)적 시각장치를 가진 서사형식이다.이 점은 만화와 영화를 가르는 중요한 차이점이기도 하다.

영화가 시간 예술 곧 4차원 예술이라 한다면 만화는 인쇄지면의 2차원 예술이면서도 그 특유의 시공간 연속체로서의 서사 형식과 그리고 특히 파놉티콘적 시각장치의 창조적 운용 가능성 때문에 5차원 예술이라 할만큼 복합적이고 고도로 미묘한 예술적 상징과 쾌락을 함축하고 있는 예술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쥐〉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만화가 아트 슈피겔만은 "만화는 연극보다 유연하고 영화보다 심오하다"고 말했는데,이것은 만화의 이같은 미묘한 5차원적 표현 가능성을 지적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완성에 13년이 걸린 자신의 〈쥐〉의 저자다운 말이라 하겠다.

그림의 개성과 매력은 이 만화라는 시각장치의 창조적 운용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화가 보여주는 시각적 서사의 다양성과 그 표현 미학적 질 그리고 실험성은 정말 현기증이 나리만큼 대단한 것이다. 특히 유럽 만화의 다양성과 실험성이 얼마나 그들의 형상문화의 전통과 제도에, 그 제도의 인문성과 세속성에 다같이 크게 빚지고 있는지 크게 주목해봐야 한다.

그러나 만화는 예술이면서 또한 제도화한 고급예술이 아니라는 점이 그것의 큰 강점이기도 하다. 만화는 미술관의 미술보다 훨씬 더 상호반응적이고 참여적이다.

만화는 평등하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고 이것이 디지털 시대의 심적 상태랄까 문화적 본능과 잘 맞아떨어지는 본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보통 사람끼리 자유로히 소통하는 그래피티(낙서)이자 온라인 대화방 같은 것이다. 만화는 21세기에 가장 어울리는 글로벌한 심적 상태, 지구의 정반대 쪽에 사람끼리도 그것이 누구이건 서로 즉각 알아보고 쉽게 소통하는 일종의 대중적 영매(靈媒)라 할 수 있다.

만화예술론은…

영화(제7)와 TV(제8)에 이어 만화를 흔히 '제9의 예술' 이라고 한다. 20세기 최후의 종합예술이란 수식어도 붙는다. 그만큼 가능성이 큰 예술이란 뜻.

'만화예술론' 은 아직 이론적 토대가 취약한 우리 만화계에 처음으로 제기하는 본격 만화론이다.

여기에서 만화는 인쇄 지면의 2차원 예술이면서 영화를 능가하는 5차원적 특성을 갖고 있는 고도의 예술로 격상된다.

만화에는 또한 독자들이 그림과 쉽게 자기 동일시할 수 있는 묘한 마력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런 장점 때문에 만화는 쌍방향성을 특징으로 한 디지털시대의 대표적 대중예술로 간주한다.

이런 기초 위에서 '우리 만화론' 의 앞날이 기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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