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구두 수선공 권준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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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구두요?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는데 닳을 일이 있나요. 10년은 족히 신지요.”

 23년 째 천안 신부동 시외버스터미널 앞에서 구두 수선소를 운영하고 있는 권준호(56)씨. 권씨는 매일 오전 8시 반이면 문을 열고 일을 시작한다. 결혼하고 아들 셋을 키워내는 동안, 경조사가 있어 잠깐 문을 닫고 다녀 올 때 외에는 쉬는 날이 없다.

신부동 버스 터미널 앞에서 23년째 구두 수선소를 운영하는 권준호씨는 수선된 구두를 보며 만족하는 손님들을 볼 때 보람있다고 말했다. [조영회 기자]

 “처음에는 천안역 앞 합동 터미널 앞에서 일했어요. 1989년에 터미널이 이전하면서 따라 왔으니 30여 년 동안 터미널 앞을 지켰네요. 한양 백화점부터 야우리 백화점,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죠.”

  20대였던 구두 수선공은 이제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두 평 남짓 구두 수선소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만 달라졌을 뿐이다. 구색 맞추느라 구비해 놓은 열쇠와 도장들 옆으로 닳아서 반질반질 윤이 나는 망치가 구두 수선소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 권씨는 발모양 작업대에 구두를 뒤집어 씌우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밑창을 덧대어 붙이고 자르며 망치로 두드리는 일이 물 흐르듯 유연하다.

권씨는 싸고 견고한 것을 선호하는 단골들 때문에 비싼 재료는 쓰지 않는다. 다만 튼튼하게 고쳐 주는 일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구두를 보면 주인의 성격과 취향까지 알 수 있다”며 “싸구려 신발이라도 고쳐서 신는 게 낫다. 정말 좋은 구두인데 시기를 놓쳐 망가진 걸 볼 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권씨의 구두 수선소는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반쯤 열린 문으로 고개를 디밀고 길을 물어오는 사람들이 평일에는 수 십 명, 주말에는 수 백 명이다. 손으로는 부지런히 구두를 만지며 입으로는 쉴 새 없이 길 안내를 한다. 귀찮을 법도 하건만 답답해서 물어 오는 사람들을 모른 척 할 수 없다. 어디 가야 맛있는 천안 호두과자를 살 수 있냐고 물어오는 타지 사람들에게는 구두 수선소 밖까지 나가서 안내를 한다.

  이런 그의 성실함 때문에 찾아오는 단골들이 많다. 까까머리에 교복을 입고 지나가던 학생들이 40대가 되어 찾아와 “예전 모습과 달라진 게 없다”며 “늙지 않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한 곳에 오랫동안 앉아 세상을 잃어버리고 살아서 그렇다”며 웃는다.

  힘들고 지칠 때도 많다. 무허가 점포라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여름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 선풍기도 없이 한 자리에 앉아 일을 하는 권씨를 보며 손님들은 대단하다고 말하지만, 찾아온 손님들에게 부채밖에 드릴 수 없어 오히려 미안하다고 한다. 천안의 구두 수선소는 모두 33곳. 그 1호점으로 천안미화인 협회장을 맡고 있는 권씨는, 2007년부터 매월 회원들과 조금씩 돈을 모아 천안성정종합사회복지관에 기부를 하고 있다. 그는 “구두 수선소도 매표소처럼 허가를 내 주면 떳떳하게 세금을 내며 전기를 쓸텐데….”라며 아쉬워했다.

  권씨에게 구두 수선소는 일터이자 집이다. 그는 “깨끗하게 수선된 신발을 보며 흡족해하는 손님들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비록 남의 더러워진 신발을 만지고 닦을지언정 내 마음이 깨끗하면 그만이다. 정직하게 번 돈은 부끄럽지 않다” 며 활짝 웃었다.

홍정선 객원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가죽 구두 오래 관리하는 요령

1. 모든 구두는 손질하기 전에 먼지부터 떨어내라. 구두 솔을 이용해 먼지를 떨어 낸 후 왁스 칠을 해야 효과적이다.

2. 가죽 구두는 되도록 빗물이나 눈에 젖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에 젖었다면 통풍이 잘 되는 그늘에서 말린 후, 왁스 칠을 꼼꼼하게 자주 해 주면 좋다.

3. 구두의 유행은 2년 주기로 다시 돌아온다. 떨어지고 찢어져서 버리는 일 외에는 유행이 지난 디자인이라도 함부로 버리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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