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재롱잔치나 하려고 600억 들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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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계룡시에서 논산 방향으로 국도 1호선을 타고 자동차로 3분쯤 달리면 계룡종합문화체육단지가 나온다. 계룡시 외곽 야산에 자리 잡은 웅장한 건물이어서 한눈에 들어온다. 3만6000㎡의 터에 ▶계룡문화예술의 전당 ▶시민체육관 ▶종합운동장 등 3개 시설이 있다. 이들 시설 조성에는 모두 1018억원이 쓰인다.

 1일 오후 찾은 문화체육단지는 썰렁했다. 체육관은 이용자가 없어 굳게 잠겨 있었다. 휴일이었지만 문화예술의 전당 공연도 없었다. 문화예술의 전당 관리자는 “3월에도 공연이 거의 없다”며 “객석 규모(800석)에 비해 수요가 없어 공연을 자주 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계룡시민 김현주(44)씨는 “체육관 이용료(4시간 4만원)를 받는 데다 시 외곽에 있어 시민들이 외면한다”고 말했다.

 문화예술의 전당은 지하 2층·지상 3층 규모다. 2009년 임대형 민자사업(BTL) 방식으로 착공해 지난해 6월 문을 열었다. 이 때문에 운영·관리비 명목으로 20년간 해마다 30억원씩 총 600억원을 시공사에 지급해야 한다. 계룡시 연간 가용예산(100억원)의 30%에 해당하는 돈이다. 문화예술의 전당은 지난해 6월 개관 이후 연말까지 60차례 활용됐다. 대부분 유치원 재롱잔치 등으로 음악공연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기간에 각종 공연 운영비로 1억원을 썼다. 반면 수입(대관료)은 4000만원에 그쳐 적자가 6000만원에 달했다. 계룡시의회 김대영 부의장은 “계룡시 인구(지난해 4만2000명)와 재정 형편 등을 고려하지 않은 전시행정의 결과”라고 말했다.

 계룡종합문화체육단지는 자치단체의 빗나간 문화·인프라 구축사업의 표본이다. 계룡은 2003년 9월 1개 면(面) 지역(논산시 두마면)이 시로 승격했다. 군 시설이 많은 지역 특성을 살려 ‘특별한 시(특례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탄생했다. 계룡시에는 육·해·공군 등 3군 본부(계룡대)가 있다. 출범 당시 인구는 3만 명에 불과했다. 시 출범과 동시에 최홍묵 초대 계룡시장을 중심으로 문화·체육 인프라 구축 사업이 추진됐다. “시 단위 자치단체에 걸맞은 문화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계룡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09년부터 288억원을 들여 종합운동장(2015년 완공)을 짓고 있다. 1만3000석의 관중석과 인조잔디가 깔린 주경기장이 조성된다. 도민체전 개최가 가능할 정도의 규모다. 하지만 도민체전은 충남도 내 16개 시·군이 순회 개최한다.

 지난해 5월 완공된 체육관(관중석 1600석) 건립에는 130억원(시 예산 71억원)을 썼다. 체육관 운영에는 연간 1억7500만원이 필요한데 개관 이후 연말까지 83차례 이용에 그쳤다.

 계룡시의 문화·체육시설 건립은 전남 장성군이 인근 군부대(상무대) 시설을 공동 사용해 신축예산 200억원을 절약한 알뜰 행정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대해 계룡시 최원영 부시장은 “세금 낭비가 되지 않도록 전국 규모의 체육대회나 수준 높은 공연을 유치해 시설 이용을 활성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충남대 육동일(자치행정학과) 교수는 “ 지자체끼리 주요 시설을 공동 사용해 예산낭비를 막을 수 있는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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