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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49) 투신사 <1> ‘홍길동 2’를 폐기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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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외환위기 직후 한국의 투자신탁 시장은 250조원짜리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어느 기업이 망할지 아무도 모르는 불안한 상황. 그럼에도 국제통화기금(IMF)은 시가평가를 통한 투명회계를 집요하게 요구했다. 사진은 IMF 서울사무소장으로 부임한 데이비드 코가 2000년 5월 재정경제부 출입기자들을 만나 “한국 경제는 건실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하는 모습. [중앙포토]

‘홍길동 1’과 ‘홍길동 2’. 보고서 이름 치곤 좀 촌스럽다. 보안을 위해 내용과 전혀 다른 엉뚱한 이름을 단다고 단 게 홍길동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부 기록에도 남아있지 않다. 내가 없애버렸다. 이 보고서를 만든 건 연원영 금융감독위원회 구조개혁기획단 총괄반장과 김범석 재정경제부 과장이었다. (1998년 3월 김 과장은 한 달 뒤 출범하는 금감위에 미리 파견 형식으로 나와 있었다.)

 1998년 3월 금감위원장으로 내정된 직후, 나는 두 사람에게 은밀히 지시했다. “금융 구조조정의 큰 그림을 그려보라.” 사무실은 서울 여의도 관광호텔에 차렸다. 보안을 위해서였다. 2개월이 지난 5월의 어느 월요일. 둘이 내 방에 들어왔다. 연원영이 내민 보고서 표지엔 달랑 제목만 적혀 있었다. ‘홍길동 2’. 보고서는 과격했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은행뿐 아니라 증권·보험·투신 시장을 한번에 정리한다. 투신 상품은 실적대로 돌려준다. 시장이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긴급 재정명령을 내리고 증시는 1주일 문을 닫는다.’

 긴급 재정명령. 이를 테면 ‘경제 계엄령’이다. 계엄을 선포하고 증시를 닫는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연원영을 쳐다봤다. 그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당시 금융시장에 답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 ‘부실 은행을 먼저 정리하고 증권·보험·투신은 나중에 한다.’ 구조조정 얼개도 대충 이 정도뿐이었다. 홍길동 1도 이런 청사진에 따라 작성됐다. 그러나 연원영은 홍길동 1로는 안 된다며 홍길동 2를 들고 온 것이다. 홍길동 2는 은행뿐 아니라 전 금융권을 동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은행 먼저 처리했다간 투신·보험 등에서 동시 대량 인출 사태가 일어날 게 뻔하다는 것이다.

 관건은 232조3439억원의 투신 실적배당 상품의 처리. 이게 시장의 폭탄이었다. 당시엔 투신 상품을 원금 보장을 약속하고 팔았다. 그러나 이 중 상당수는 썩었다. 얼마나 썩었는지도 알 수 없다. 어느 회사채, 어느 기업어음(CP)이 부도가 날지 아무도 몰랐다. 시가대로 돌려주면 원금의 절반이나 건질까. 투자자들이 원금을 돌려달라고 나서면 ‘뱅크런’ ‘펀드런’이 동시에 날 판이었다. 어차피 해야 할 청소. 동시에 칼을 댄다? 그랬다가 남아날 금융회사가 있을까. 덩달아 기업들까지 줄줄이 쓰러지지 않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김범석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건 꼭 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자료 파기하고 일체 비밀로 해.” 연원영이 반대했다. “긴급 조치가 필요합니다.”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야.”

 나는 보고서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둘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방을 나갔다. 그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더 부서질 시장이 있느냐”고 내게 묻고 싶었을 것이다. 5월 들어 한남투자신탁의 환매 사태가 시작됐다. 시장은 크게 흔들렸다. 종합주가지수는 300대에서 오르락내리락 했다. 사상 최저였다. 사려는 이가 없어 수익률이 연 30%를 넘어서는 회사채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왕 망가졌을 때 한 번에 다 도려내자” 는 뜻이다. 틀린 얘긴 아니지만 정답도 아니다.

 체력이 떨어진 환자는 수술하지 않는 법이다. ‘일단 시간을 끈다. 그렇게 연착륙시킨다.’ 그게 내 구상이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다급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줄기차게 “회사채를 시가(時價)대로 평가하라”고 요구하던 때였다. 나중에 IMF 서울사무소장이 되는 데이비드 코의 채근은 집요했다. 98년 상반기 당시 IMF 부국장이었던 그는 보름이 멀다 하고 한국을 찾았다. 6월부터는 대놓고 나를 압박했다. 은행 구조조정이 끝나가는 무렵이었다. “회사채 시가평가를 서둘러달라. 투신사가 제대로 정리돼야 금융 시장이 안정을 찾는다.”

 시가평가. 한번 설명한 적 있지만 시장 가격대로 자산 값을 매기는 것이다. 시장 가격엔 미래에 대한 전망도 포함된다. 지금 간신히 버티고 있는 기업 중 상당수는 언제든 부실 기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 말은 지금은 멀쩡히 거래되는 정상 회사채가 언제든 부실 채권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거다. 97년 말에 이미 정부는 IMF와 “채권도 시가평가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해 둔 상태였다. 데이비드 코를 통해 IMF와 끈질기게 협상을 벌였다. 내가 메시지를 전하면 그가 본부로 돌아가 의견을 받아왔다. 국내 일부 경제학자들도 “채권 시가평가가 없는 금융 시장의 구조조정은 의미가 없다”고 날을 세웠다.

 긴 협상 끝에 회사채 시가평가 시점을 2000년 7월 1일로 미뤘다. 2년이란 시간을 번 것이다.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때쯤이면 기업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끝날 것으로 봤다. 기업들이 체력을 회복하면 투신시장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된다. 시가평가를 해도 충격을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시가평가를 미뤄놨지만 마음 한구석은 언제나 불안했다. 손도 못 대고 덮어 둔 250조원짜리 폭탄 때문이었다(1년 뒤 300조원까지 늘었던 투신 상품은 99년 7월엔 약 250조원이 된다). 대우 사태가 정점을 향해 치달을 땐 더 노심초사해야 했다. 99년 여름, 대우가 워크아웃을 신청했을 땐 차라리 안도감이 든 것도 그래서였다. 투신 시장의 최고 불확실성이 마침내 사라진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제는 250조원짜리 폭탄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 것이다.

‘홍길동’ 성공했다면 공적자금 적게 들었을 것
김범석 당시 금감위 과장

김범석 당시 금감위 구조개혁기획단 과장은 1998년만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그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며 “조금만 삐끗하면 나라가 망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 그래서 ‘뱅크 할러데이(시장 문닫기)’ 생각했나.

 “한 달을 고민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 시장을 멈춰 놓고 수술하면 큰 혼란이 왔을텐데.

 “이미 시장이랄 게 없었다. 모두가 (주식이든 채권이든) 던질 때다. 기능을 전혀 못하는 시장도 시장인가. 어차피 망가진 시장, 일주일 문 닫는다고 더 큰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 그런데 왜 실행을 못 했나.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 증권·투신사 실무진들이 난상토론을 벌였다.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 한 달을 검토했는데, 득실과 성패를 안 따져 보고 보고서를 만들었단 말인가.

 “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였다. 누가 대통령에게 가서 ‘시장 문을 닫아야 합니다’라고 하겠는가. 그랬다가 만에 하나 실패라도 하면 뒷감당이 불가능한 일 아닌가.”

 - 성공했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시장이 좀 일찍 정리됐을 것이다. 공적자금도 훨씬 적게 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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