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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만 보고 죽자 사자 뛰었는데…" 삼성·LG의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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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27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막을 올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관람객들이 삼성전자 바로 옆에 자리 잡은 화웨이의 전시장을 돌아보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노키아·애플만 보고 죽자 사자 뛰었는데 문득 돌아보니 중국 업체들이 바로 뒤에 서 있다.”

 27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막을 올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전시장을 둘러보던 LG전자 관계자가 한숨을 쉬었다.

이번 행사에서 중국 업체들의 약진이 눈부시다. 이번에 쿼드코어 스마트폰을 내놓은 업체는 넷이다. 한국의 LG전자(옵티머스 4X HD)를 제외하면 대만 HTC(원X)와 중국 화웨이(Era), ZTE(어센드D쿼드) 등 모두 중국계 업체다. 쿼드코어는 중앙처리장치(CPU)에 두뇌 역할을 하는 코어 4개를 장착한 것을 말한다. 이 관계자 입에선 “하드웨어는 사실상 다 따라왔다”는 말까지 나왔다. 일부에서는 ‘중국의 침공(Chinese invasion)’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다.

 삼성·LG전자 바로 옆에 부스를 차린 화웨이는 쿼드코어폰 2종을 선보였다. 프로세서를 자체 제작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화웨이를 제외한 쿼드코어폰 출시 업체들은 엔비디아의 ‘테그라3’을 사용했다. 세계 휴대전화 제조사 가운데 프로세서 칩셋을 자체 제작해 장착하는 업체는 ‘엑시노스’ 시리즈를 만드는 삼성 외에는 거의 없다. 대부분 퀄컴의 스냅드래곤, 엔비디아의 테그라,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OMAP 등을 사다가 쓴다. 애플은 자체 칩셋을 삼성에서 위탁생산한다. 이런 휴대전화용 프로세서는 모두 영국 ARM의 설계를 바탕으로 최적화한 것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직접 칩셋을 제조해 보면 어떻게 만들어야 적은 전력 소모로 높은 성능을 이끌어내도록 최적화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중국산 칩셋이 만족스럽게 돌아가면 그땐 무서운 사업자로 돌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도 “중국 업체들이 타사의 장점을 흡수하는 능력이 한층 좋아졌고, 기획부터 제품을 내기까지 시간도 짧아졌다”며 “곧 우리를 위협할 것이라는 신호가 분명히 왔다”고 말했다.

 화웨이는 원래 기지국용 이동통신 장비에서 강점을 보인 회사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을 찍어내며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다. 1000위안(17만원) 이하의 제품을 뽑아낼 수 있는 가격 경쟁력이 장점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해 4분기 전 세계에서 1396만 대의 스마트폰을 팔아 점유율 2.9%로 6위에 올랐다. 5위인 LG전자와는 300만 대 차이다. 이번 전시회의 메인 스폰서를 맡은 ZTE도 다양한 스마트폰을 선보였다. 이 회사 역시 저가형 제품이 특징이다. 지난해 4분기 점유율은 노키아·삼성전자·애플에 이어 4위다.

이번 전시회에서 화웨이와 ZTE의 전시관에는 예년보다 훨씬 많은 관람객이 몰려 위상 변화를 실감케 했다. 중국의 추격은 삼성의 갤럭시S3 공개에도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는 중국의 베끼기를 막기 위해 MWC에 내놓지 않고 갤럭시S3를 공개와 동시에 출시하기로 전략을 바꿨다. 지난해 MWC에서 갤럭시S2를 공개한 뒤 출시하기까지 3개월 동안 중국 업체들에 추격할 시간을 줬다는 것이다. 이날 아침 일찍 전시장에 들른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들은 우리가 제품을 출시하기도 전에 비슷한 제품을 내놓는다”고 경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 업체들의 스마트폰은 소프트웨어와 사용환경(UI) 측면에서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LG전자 관계자는 “아직은 구글의 운영체제(OS)를 그대로 올린 수준이지만 하드웨어 추격이 끝나고 나면 소프트웨어도 빠르게 격차를 좁힐 것”이라며 “한층 더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바르셀로나=박태희 기자

ARM  1990년 영국 아콘컴퓨터와 미국 애플의 합작으로 탄생한 프로세서 설계 전문업체. 애플은 98년 ARM 지분을 모두 팔았다. ARM이 설계한 프로세서는 인텔 제품보다 성능은 떨어지지만 전력 소모가 적고 다양한 기기에 적용할 수 있어 모바일용으로 많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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