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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분야 노벨상은 과연 불가능한가

중앙일보

입력

올해도 물리.화학.의학 등 과학분야의 노벨상은 선진국에서 독차지해 우리로서는 `또 남의 나라 잔치가 됐구나''하는 느낌속에 부러움을 넘어서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9명 수상자 모두 미국, 러시아 등 외국인들이며 특히 일본의 시라카와 히데키(白川英樹) 쓰꾸바대 명예교수가 지난 70년대 후반 고분자의 전도성에 대한 중요한 발견을 한 공로로 화학상을 받은 것은 이웃인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전세계인 앞의 자랑이기도 한 노벨상은 과학부문의 경우 인류의 복지 증진과 과학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업적을 남긴 최근의 발견, 발명 또는 개선 등의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수여된다.

그외 문학분야에서는 이상주의적인 뛰어잔 작품을 쓴 사람, 평화분야에서는 국가간 우호와 군대의 폐지 또는 감축과 평화회의 개최 혹은 추진에 가장 헌신한 사람에게 주도록 돼 있다.

과학부문 국가별 수상현황

노벨재단이 지난 1901년부터 금년까지 100년간 수여한 과학부문 노벨상의 역대 수상자는 금년 9명을 포함 물리학 162명, 화학 134명, 의학.생화학 172명 등 28개국에서 모두 468명. 국가별로는 미국이 198명(의학 81명, 물리학 70명, 화학 47명)으로 전체 수상자의 42%를 차지했으며 이중 178명을 2차 세계대전 이후 배출, 국력과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주었다.

미국 다음은 70명(전체의 15%)을 배출한 영국으로, 물리 21명.화학 25명.의학 24명 등으로 3개 분야에서 고루 수상했다. 독일도 60명을 차지했는데 화학의 경우 27명으로 자국 수상자의 거의 절반을 차지, 이 분야에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그외 물리학 19명, 의학 14명 등이다. 이어 프랑스가 27명에 달하는 등 이들 美.英.獨.佛 선진 4개국이 노벨상 과학부문에서 전체 4분의 3에 달하는 355명의 수상자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 4개국 이외에 10명 이상의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는 스웨덴(16명), 스위스(15명), 네덜란드(12명), 러시아(11명)를 비롯 4개국이며 5~10명인 국가는 오스트리아와 덴마크가 각 8명, 이탈리아(8명), 캐나다와 일본(각 6명) 등 5개국에 불과하다.

2명이상인 나라는 벨기에(4명), 호주와 아르헨티나가 각 3명, 중국.헝가리가 2명씩이다. 이밖에 1명의 과학부문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는 유럽의 핀란드.체코.노르웨이.스페인.포르투갈, 중남미의 멕시코, 아프리카의 남아공.이집트, 아시아에서는 인도.파키스탄 등이다.

아시아의 과학부문 노벨상 수상은 이번 일본 시라카와교수를 비롯 4개국, 10명으로 늘어났으며 물리학이 7명(일본 3명, 중국 2명, 인도 및 파키스탄 각 1명)으로 다른 분야보다 월등히 많은 수상자를 냈다.

그밖에 화학상 2명과 의학.생리학상 1명 등으로 모두 일본인에게 돌아가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지속되고 있는 기초과학에의 투자 과실을 꾸준히 거둬 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의 여건과 대책

아프리카와 중남미 국가들도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내는 마당에 경제규모로 이들 보다 훨씬 비중이 큰 한국이 그런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계의 많은 사람들은 우선 우리나라가 근대 과학을 시작한 지가 얼마되지 않은데다 특히 노벨상의 토대가 되는 기초과학의 역사는 극히 짧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받게 된 가운데 근대 과학이 우리나라에 소개됐으나 일제는 의과대학이나 상고, 농고, 공고 등 실업계 학교를 세워 한국인에 대한 기능중심 교육에 주로 관심을 돌렸을 뿐 자연과학이나 원천기술은 소홀이 했다는 지적이다.

이어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는 동안 국내적으로도 기초과학에 눈을 돌릴 사이가 없었으며 5.16 혁명이후 공업화 정책속에 중화학 등 과학의 응용분야에 치중하다 67년에야 비로소 연구소다운 연구소인 KIST를 설립, 30여년이 경과된 정도이다.

또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돼 있는 `빨리빨리'', `대충대충''적 행태도 노벨상과 같은 장기적 비전속의 결과물과는 근본적으로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하는 사람도 많다. 올해 노벨화학상 공동 수상자인 미국 샌타 바버라 캘리포니아대의 앨런 J 히거와 펜실베이나아대 맥더미드, 시라카와 박사 등은 이미 오래전인 지난 70년대에 고분자의 전도성에 대한 중대 발견을 한 뒤 연구와 실용화 노력을 계속한 끝에, 20여
년이 지난 이제야 노벨상을 타게 됐다.

이는 노벨상 수상이 오랜 기간의 탄탄한 기초연구를 토대로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 형식적이거나 근시안적, 졸속적, 전시적인 관행이나 교육, 행정 등의 사회 패턴과 환경 아래에서는 노벨상 수상을 배태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정욱(金正旭) 고등과학원장은 외국에 비해 시작이 뒤떨어져 있지 않은 생명공학분야와 상대적으로 투자가 적어도 가능한 화학, 생물분야에서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다른 분야에 앞서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과학계 인사들은 이와 함께 노벨상 수상을 기치로 출범한 고등과학원, 과학기술한림원 등 관계기관의 능동적이고도 효과적 지원, 지식과 지혜의 전수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밖에 과학기술부, 과학재단, 과학문화재단을 비롯한 관련 기관들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과학육성시책이 이벤트 성격에서 떠나 보다 실질적으로 과학마인드를 심어주고 키워주는 방향으로 전개돼야 할 것이라는 주문들이다.

한 관계자는 노벨상이 로비를 해서라도 획득할 가치가 있는 명예 그 자체라기보다는, 뼈를 깎는 노력과 인류사회에 대한 기여를 기리고 장려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전제하면서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노벨상이 주는 메시지를 겸허히 받아들이려는 의지와 자세가 중요하며 그런 토양위에서 비로서 자연스럽게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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