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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추억의 그라운드 7. - 김형석

중앙일보

입력

고등학생 이상 연령의 야구팬들에게 김형석의 활약은 먼 기억이 아니다. 14년간 프로야구에서 중심타자로 활약했던 김형석. 누구나 쓸쓸한 뒤안길이 있듯 김형석도 98년 삼성 유니폼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났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를 영원한 OB맨으로 기억한다. 올해 홍익대 감독으로 취임하여 새로운 야구인생을 살고 있는 그를 조인스가 찾았다.

1. '미스터OB'로의 등극

1985년 대전에서 서울로 연고지를 옮긴 OB 베어스(현 두산)는 많은 홍보와 함께 한지붕 두가족인 MBC 청룡에 대한 라이벌의식을 고취시켰다. 또한 팬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무엇보다도 성적향상을 위한 노력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구단의 전력증강엔 신인영입의 비중이 가장 높다.

이런 OB의 상황에서 김형석이란 대형신입의 영입은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당시 감독인 김성근-현 삼성 2군 감독-은 김형석을 1번타자로 기용한 뒤 교체시키는 방법을 써가며 시험가동했다. 김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딱'하고 후려치는 장쾌한 스윙에 타구가 힘을 받아 뻗어나가면 넓디넓은 잠실구장의 펜스를 훌쩍 넘기거나 직접 때리는 시원함을 보여줬다.

김형석은 85년 데뷔와 동시에 91경기 출장, 3할2푼2리의 타율에 26개의 장타를 생산(홈런 7개, 2루타 14개, 3루타 5개)하며 이듬해인 86년부터 OB의 중심타자로 급부상했다.

86년 9월 17일을 김형석은 잊을수가 없다. 이날은 정규시즌이 마무리되는 날이었다. 김형석도 2년차 징크스 없이 붙박이 3번 타자로 활약했다. 그런데 이날의 경기는 3팀의 희비가 교차되는 경기로 남았고 김형석이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OB와 포스트시즌 진출을 다투던 MBC는 해태를 9-4로 꺾고 한국시리즈 구상을 하고 있었다. 9회 현재 OB가 롯데에 1-3으로 지고 있었고, 상대 투수는 최동원이기 때문이었다. 롯데는 포스트시즌 진출과 관계없는 경기였지만 19승인 최동원이 1승을 추가하면 3년 연속 20승이라는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어 사력을 다했다.

운명의 9회말, OB는 2번 김광수의 좌전안타에 이어 김형석이 우월 홈런을 날리며 3-3동점을 만들었고 신경식의 좌중월 3루타에 이은 악송구로 순식간에 4-3역전승을 거두었다. OB는 극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MBC는 그 다음해를 기약했다.

최동원도 패전투수가 되었고 패전을 면한 최일언은 승률1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김형석은 이 홈런으로 큰 자신감과 함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 철인 김형석

야구는 기록의 경기다. 선수들도 승리와 함께 각종 기록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기록은 시즌 단위로 누적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기록이 다시 탄생한다. 이런 연속 연속선상에서 아주 값진 기록이 있다. 바로 '연속경기 출장기록'

연속경기 출장기록에는 조건이 붙는다. 한 이닝에 나와서 수비에 임해야 하며, 타자로 나와 출루하거나 아웃 당하는 등의 타격완료가 이뤄져야 한다. 대주자 출전 만으로는 연속경기 출장기록이 이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 기록에 2가지 전제조건이 붙는 걸 알 수 있다. 첫째 강력한 체력이 있어야 할 것. 둘째 팀의 주전을 확보해야 할 것. 거기에 부상이 비껴 가는 운이 따라야 기록이 연장될 수 있다.

김형석의 연속 출장 기록은 622경기이다. 이 기록의 출발은 1989년 9월 24일이었고 94년 9월 4일 이른바 OB사태(당시 윤동균 감독과 선수들의 마찰로 인한 선수들의 팀 이탈)로 기록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다. 김의 체력과 능력이라면 1천 경기를 돌파할 수 있었을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진단했던 만큼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기록중단의 아픔을 95년 우승으로 만회하며 선수생활 중 가장 기쁜 순간을 맞기도 했다.

원년부터 606경기 연속출장 기록을 보유했던 김인식 현LG 2군 감독의 꽃다발을 받으며 새로운 기록을 달성했던 김형석은 자신의 기록을 경신한 최태원에게 축하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당시 야구에서 잠시 외도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에 대해 늘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메이저리그 불멸의 기록인 칼 립켄 주니어의 2,632경기(16년 3개월)와 일본의 기누가사가 세운 2,215경기에 필적하기는 힘들지만 우리 야구도 역사가 깊을수록 롱런하는 선수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귀뜸한다.

김형석이 가진 또 하나의 대기록은 프로야구 최초의 '8년 연속 1백안타'. 이 기록은 올해 양준혁(LG)이 진입하며 2번째로 고지에 등극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2001시즌 선배의 기록을 뛰어넘을 양준혁에게도 진심의 축하를 보낼 계획이다.

김형석의 대표적인 두 기록은 많은 선배들과 후배들 사이에서 이뤄진 값진 것이다. 두 기록 모두 후배가 앞서가고 있지만 자신의 이름과 함께 영원히 남을 두 기록을 그는 자랑스러워한다.

3. 그라운드의 신사

많은 야구인과 언론인들은 김형석의 매너와 성실한 훈련을 높게 평가한다. 관중석에서 바라본 그 역시 어필을 좀처럼 하지 않는 클린 플레이어였다.

팀의 최고참이던 90년대 중반 이후에도 후배들의 경조사에는 빠지는 일이 없었고, 솔선수범의 자세로 후배들이 무척 따랐다.

전지훈련에서도 오전과 오후의 정례훈련 이외에 밤 10시까지 방망이를 들고 피칭머신 앞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자유로운 야간에 최고참의 훈련모습은 후배들을 자극했고 대낮처럼 불을 밝힌 연습장의 열기는 팀 전력에 커다란 플러스요인이었다.

김형석은 높은 공에 아주 강했고, 대체적으로 가운데로 오는 공은 잘 받아쳤다. 하지만 코너를 찌르는 낮은 공에 삼진도 많이 당했다. 중장거리포 타자들의 공통점이지만 그가 낮은 코스 공의 공략법을 터득했다면 더욱 오래 팬들의 곁에 있었을 것이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97년에 그는 OB에서 방출 당했다. IMF가 모그룹을 강타하자 그 여파는 고연봉 고참선수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이다. 이른바 '명퇴'로 OB를 떠난 그에게 삼성은 제2의 야구인생을 제안했고, 대구로 온 가족이 함께 이사하며 굳은 의지를 보였지만 성적이 받쳐주지 못함에 따라 98년 가족과 상의한 끝에 은퇴결정을 내렸다. [통산 1,416경기 타율 2할7푼6리(4천866타수 1천345안타) 119홈런 656타점]

4. 국가대표 감독을 꿈꾸며

미련 없이 유니폼을 벗은 김형석은 친정 같은 OB에서 후배를 지도하길 원했지만 자리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잠시 야구에서 떠나 강남에 갈비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주변의 소개로 배구스타 김세진과 동업형식을 취했지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한다'는 진리만을 깨달은 채 배명고의 타격인스트럭터로 다시 야구와 인연을 맺었다.

99년 여름에는 2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는 등 한단계씩 지도자의 길에 밟아 나가던 중 아마야구지도자의 대학진학 금품수수가 검찰의 수사를 받으며 도마위에 오르자 많은 감독들이 구속되며 경질되었고 아마야구계는 쌀쌀하게 얼어붙었다.

대학감독과 고교감독의 연쇄교체가 단행되었고 김형석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홍익대학교 야구부에서 감독 공개모집을 한 것이다. 10여명이 지원해 경합을 벌인 끝에 김형석은 올 3월 14일 감독으로 취임했다.

감독의 자리에 앉은 그에게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자기를 가르쳐주신 감독님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대학야구도 올해부터 나무배트를 사용하는 전환기를 맞았고, 나무배트를 14년간 휘둘러온 그는 선수들을 섬세하게 지도할 수 있었다. 결국 침체의 늪에 빠졌던 홍익대 야구부를 창단 첫 해 우승으로 이끌며 홍익야구의 새로운 중흥을 예고했고, 지도자로서 가능성을 내비췄다.

제55회 전국대학야구 선수권대회 정상을 차지하며 감독상을 받은 김형석 감독은 그 어떤 상보다 기분 좋은 상이라며 앞으로 야구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제 감독 김형석에게 남은 목표는 국가대표팀의 사령탑이 되는 것이다. 서른 아홉의 나이에 대학 감독에 취임한 그가 선수들과 함께 뛰며 강하고 노련한 지도자로 거듭날 때 우리는 국가대표 감독 김형석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프로필

- 1962년 8월 18일 서울 출생
- 185Cm 85Kg 좌투좌타
- 출신교 : 신일고 중앙대
- 1985년 OB베어스 입단
- 1987년 최다승리타점 1위(11개)
- 1993년 최다안타부문 1위(147개)
- 1995년 골든글러브 지명타자부문 수상
- 1998년 삼성으로 이적
- 2000년 홍익대 야구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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