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창업 → 월세 상승에 매출 부진 → 폐업 속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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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사는 김경찬(53)씨 부부는 요즘 편의점이나 치킨집 창업설명회만 있으면 전국 어디든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간다. 서울서 열린 편의점 창업설명회에서 지난주 만난 김씨는 “앞으로 한 10년만 월 200(만원)씩만 벌 수 있으면 좋겠다”며 “아들(27)·딸(23)이 자리 잡을 때까지는 뒷바라지도 해야 하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씨는 이미 한 번 창업했다가 쓴맛을 봤다. 지난해 초 27년간 다닌 대기업을 희망퇴직한 뒤 퇴직금을 털어 대구에서 부인 친구가 하던 분식집을 넘겨받았다. 하지만 가게를 시작한 직후 길 건너에 다른 분식집이 생겨 매출이 반으로 줄었다. 라면과 김밥 값을 내리는 초강수까지 써봤지만 밀가루나 채소값이 올라 적자만 늘어 결국 문을 닫았다. 그는 “아무리 일자리를 알아봐도 내가 갈 만한 데가 없더라”며 “결국 프랜차이즈 창업을 다시 하기로 한 이유”라고 말했다.

 연초부터 치킨집이나 커피전문점, 떡볶이집 등의 창업시장은 과열 조짐을 보일 정도로 성황 중이다. 훼미리마트와 GS25,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은 물론 파스꾸찌도 지난해에는 1주일 단위로 열던 창업설명회를 요즘은 거의 매일 하고 있다.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업체는 치킨과 우동·돈가스, 떡볶이 등 종목을 바꿔가며 한 시간 간격으로 하루 세 번씩 개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창업설명회에 300~400명이 몰리고 이 중 40대 후반부터 50대가 70% 이상을 차지한다. 편의점 훼미리마트의 개발기획팀 김명규씨는 “지난 연말부터 50대 이상 참석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 이들 은 많은 수익보다 안전한 사업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뜨거운 창업 열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소상공인진흥원 노화봉 팀장은 “베이비부머 은퇴가 이제 막 시작됐는데 창업 열기가 이 정도면 앞으로는 더욱 뜨거워질 것”이라며 “창업해 성공하면 좋지만 80%가량이 실패하는 현실에서 창업에만 몰리는 것은 문제”라고 우려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선빈 수석연구원은 “자꾸 창업을 방치하면 경쟁만 더 치열해져 생계형 자영업자만 양산된다”며 “지금도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하면 우리는 자영업자가 662만 명으로 229만 명 정도 과잉이다”고 말했다.

창업에 나서는 은퇴자들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20년간 다니던 회사를 지난달 말 퇴직한 김범신(56)씨는 서울 풍납동에 이달 말 치킨집을 낸다. 김씨는 “동네를 돌아다니면 치킨집만 보일 정도여서 자영업자가 많다는 게 실감난다”며 “하지만 나이 50이 넘으면 뽑는 데가 없으니 창업 말고 할 게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위문희·이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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