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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결함 많지만 이를 대체할 기적의 제도 또한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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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해 월가에서 시작된 ‘점령(Occupy) 시위’는 1%의 탐욕에 지친 99%의 항거였다. 세계 주요 60여 개국에서 리더십 교체가 일어날 올해, 유권자 파워로 직결될 99%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경제 성장과 공정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던 빔 콕(74) 전 네덜란드 총리는 “자본주의에 결함이 많지만 이를 대체할 ‘기적의 제도(miracle system)’를 고안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며 “예산 지출항목의 재설정(reset)이나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 인상 등을 통해 복지 재원을 늘리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등이 주최하고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주관한 ‘글로벌 코리아 2012’ 참석차 한국을 찾은 그를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 세계로 확산된 점령 시위를 어떻게 생각하나.

 “월가 점령 시위는 부의 분배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고, 금융계 엘리트의 탐욕이 도를 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신호다. 이제 어떻게 하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경제 성장에 따른 이득을 공정하게 나누고, 동등하고 완벽한 권리(equal and full right)를 누릴지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마법 같은 해결책(magical solution)’이란 없다. 자본주의는 결함이 많은 것이 사실이고,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결함들이 더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대체할 기적의 제도를 고안해 내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중국식 국가 자본주의(state capitalism)나 개발독재에 대한 서방의 비판이 있는데 동의하는가.

 “자본주의란 여러 변이가 존재한다. 중국은 한쪽으로는 국가가 조정하면서 한쪽으로는 자유경제를 추구하고 있다. 어려운 길을 걷고 있다.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의 기능에 대해 자아비판을 한다면 중국의 체제에 대해서도 결함이나 부족한 부분을 비판하는 것이 맞다. 중국에서 보호되지 않는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 등에 대해 침묵해선 안 된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자 틈에 끼어 있는 한국은 한·중·일 회담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을 통해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 한국에서는 복지 문제가 큰 화두다. 복지 혜택 확대와 여기에 필요한 재정 확보를 동시에 이룰 방법이 있을까.

 “한국과 같은 발전을 이뤄낸 국가에서 이런 변화는 논리적 수순이다. 유럽 노동자들도 처음에는 일자리가 있다는 것 자체만 중시했다. 하지만 이제 삶과 일의 균형, 일자리의 질, 출산 및 육아휴가 등을 점점 중시한다. 이것이 논리적 변화다. 물론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방법이 문제다. 나랏빚이나 예산 자체를 늘리는 것보다는 공공예산의 지출항목을 재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금을 인상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는 고소득자에 대한 세율 인상 등으로 공정한 분배(fair share)를 이루자는 뜻이다.”

 -지출항목을 재설정하려면 이미 준 것을 빼앗아야 하는 일도 생긴다. 이에 대한 저항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일자리 공유나 근로시간 단축 등은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며 더 길게, 더 생산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연금이나 퇴직금만으로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 교육을 통해 청렴한 지식사회와 지식경제를 향해 가도록 투자해야 한다.”

글=유지혜 기자

노사정 대타협으로 재정적자·고실업 잡아
빔 콕 전 네덜란드 총리는

빔 콕(Wim Kok) 전 네덜란드 총리는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1976~86년 네덜란드 노동조합총연맹(FNV) 위원장을 지냈고, 86년 노동당 지도자 욥 던 아윌 후임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94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며 총리직에 올라 8년 동안 내각을 이끌었다.

 특히 그가 FNV를 이끌 당시인 82년 체결한 ‘바세나르 협약(Wassenaar Agreement)’은 노사정 대타협의 표본이다. 대규모 재정적자와 높은 실업률 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계는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면서 근로시간 단축을 얻어냈고, 고용주는 기간제 고용계약 확대를 통해 일자리를 늘렸다. 정부는 비정규직 차별을 막는 법안을 마련했다. 바세나르 협약은 네덜란드 경제가 되살아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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