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3월 파산 막았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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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구제금융 주도한 메르켈 독일선 비아냥 20일(현지시간) 독일 서부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카니발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장식 무대를 따라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다. 우산 모양의 치마는 독일이 유럽에 구제금융이라는 ‘우산’을 씌워주고 있음을 빗댄 것이다. [뒤셀도르프 AP=뉴시스]

그리스가 3월 국가부도 위기를 넘길 듯하다.

 독일 볼프강 쇼이블레 등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21일 오후(한국시간) 2차 구제금융을 그리스에 제공하기로 했다. 직접 지원 규모만 1300억 유로(약 192조4000억원)다. 그리스는 다음 달 20일 빚 145억 유로를 갚을 수 있게 됐다.

 쇼이블레 장관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재무장관회의 직후 “그리스 정부가 관리하지 않는 계좌를 통해 구제금융이 지원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 등 이른바 트로이카가 지원금을 관리하겠다는 얘기다.

 이날 합의된 구제금융 패키지는 예상보다 커졌다. 쇼이블레 장관 등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160%에 달하는 그리스 국가부채 비율(2011년 말 기준)을 2020년까지 120%로 줄이기 위해 패키지에 세 가지 조치를 곁들였다. 첫째는 1차 구제금융 금리 인하다. “그 결과 그리스 이자 부담이 530억 유로 정도 줄어들 전망”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이날 전했다. 둘째는 ECB의 구제금융 참여다. ECB가 재정위기 와중에 사들인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 채권 덕분에 거둔 수익을 그리스 지원에 쓰기로 했다.

 셋째는 민간 채권자의 고통분담(PSI) 규모 확대다. 유럽 시중은행 등은 애초 원금과 이자의 절반을 깎아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 회의를 거치며 탕감 비율이 50%에서 53.5%로 높아졌다. 이 고통분담을 뺀 그리스 실제 지원금은 애초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쇼이블레 등은 지난해 말까지 1, 2차 구제금융을 합해 1700억 유로 정도면 충분하다고 봤다. 하지만 이날 회의 결과 직·간접적인 구제금융은 최소 2560억 유로에 이르게 됐다.

 유로존 재무장관은 그리스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낳을 후폭풍을 우려했다. “그들은 그리스가 추가 긴축 등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돈을 투입하기로 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보도했다.

 실제 그리스는 고강도 긴축으로 실물경제가 사실상 붕괴된 상태다. 그런데도 이달 말까지 추가 긴축을 위해 20여 가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실물경제가 망가져 세금이 잘 걷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EU 등이 2차 구제금융 패키지로 빚 부담을 많이 줄여줬지만 기대만큼 그리스 국고 사정이 좋아지기 힘들어 보이는 까닭이다.

 게다가 그리스인은 강도 높은 긴축에 반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리스가 긴축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 FT는 유럽 채권시장 전문가의 말을 빌려 “그리스의 재정 건전화 약속→구제금융 수령→약속 불이행→EU의 지원 중단과 위기 고조→추가 긴축 약속→추가 구제금융으로 이어진 악순환이 끝나지 않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민간 채권자의 반발도 복병이다. 헤지펀드 등이 애초 계획보다 높아진 탕감 비율에 반발하고 ‘자발적 고통분담’을 거부할 수도 있다. 글로벌 채권시장에서 비자발적 탕감은 곧 국가부도다. 세계 금융시장에 패닉이 일어날 수 있다.

비자발적 고통분담

채권자가 미리 합의해 주지 않았는데도 채무국 또는 국제기구의 결정에 따라 원금과 이자가 탕감되는 것. 자발적 고통분담은 신용디폴트스와프(CDS) 대지급이 이뤄지지 않는 반면, 비자발적 고통분담은 CDS 대지급이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CDS는 투자은행·보험회사 등이 채권자에게서 보험료(프리미엄)를 받는 대신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하면 원금을 대신 주기로 하는 신용파생상품 계약이다. 그리스 디폴트는 거대한 CDS 시장의 패닉을 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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