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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삼각파도에 직면한 한국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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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흥규
성신여대 교수

2012년 한국 외교는 중대한 도전과 시련에 직면해 있다. 세계적으로는 미·중 간 대(大) 세력전이(轉移) 양상이 전개되면서 치열한 갈등과 마찰이 일고 있다. 동아시아 역내에서는 중국과 일본 간의 소(小) 세력전이가 진행돼 갈등 수위도 높아지고 마찰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북한은 정권 생존을 위해 핵무장을 계속하면서, 부상하는 중국 등에 올라타 한국에 전략적 우위를 점하려 한다.

 2012년 대외관계 전망은 더욱 우울하다. MB의 미국 일변도 외교는 강한 역풍을 맞고 있다. 그 여파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 파견 연장에 대한 국회 동의도 얻기 어려울 전망이다. 결국 올 하반기부터는 미국과 심각한 갈등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과 신뢰의 심리선은 수교 이래 최저 상황이다. 중국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 직후 25만 명에 달하는 군을 재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북한에 30만t의 식량과 필요한 석유를 공급했다는 보도도 있다. 중국 외교부는 북한의 안정을 해칠 어떤 행동도 하지 말라고 각국에 요청했다. 맥락을 잘 보면 결국 한국을 겨냥한 것이다.

 일본과는 양국 정상회담 이후 관계가 더욱 악화됐다. 당분간 개선될 징조는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핵무장을 계속하면서 필요하다면 6자회담 상대 중 가장 약한 고리인 일본에 납치자 문제의 전향적 입장을 제시해 대북 제재의 연합전선에서 이탈하게 할 것이다. 일본은 국내 정치상 북한의 제의를 거부하기 어렵다. 북한은 신정권을 공고화하기 위해 MB정부와 갈등과 마찰을 유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것이고, 하반기 이후 일정한 남북 간의 충돌도 예상된다. 그나마 러시아가 대북 문제에 있어 우리의 입장과 가까워 보이나 상호 전략적인 유대를 할 신뢰의 수준에는 턱없이 모자라 보인다. 한국의 외교는 고립무원의 상황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72년 미·중 간에 급속한 관계개선이 이뤄진 것은 중국이 혁명외교로 인해 국제적으로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해 있었고 이것이 국가안보에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를 깨닫게 된 데 그 연원이 있다. 중·소 분쟁으로 소련과 대립하고, 미국과는 이데올로기적 대립으로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 당시 세계의 G2와 모두 갈등관계에 놓인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생존을 추구한다면 적어도 이들 중 한 국가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중국의 절박한 현실인식이었다. 1980년대 중국이 ‘독립자주외교노선’을 추구한 것은 이제 미국 편향외교를 넘어 G2와 다 같이 좋은 관계를 형성해 스스로의 운명을 타개해 나가겠다는 보다 적극적인 사고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한국처럼 국제관계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의 ABC는 국내 정치의 여부와 관계없이 국제적으로 고립무원이 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가 미국 편향외교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해졌다. 세계적 차원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동아시아 차원에서는 세력전이의 여부와 상관없이 미·중은 이미 G2를 형성하고 있고, 이들의 전략적 이익에 반해서는 어떠한 현상변경도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강중견국(强中堅國) 외교를 추구하는 우리의 선택은 미국과 동맹을 잘 유지하면서 중국과도 화합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연미화중(聯美和中) 전략의 채택이 불가피하다. 그리고 새로운 외교적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하드 및 소프트 외교역량을 시급히 개선하고 강화해야 할 것이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삼각파도에 직면해 난파할 수도 있는 한국이라는 배를 잘 이끌고 갈 국제적인 감각과 역량을 지니고 있는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2012년 선거는 중요하다.

김흥규 성신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