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수근의 무채색, 그건 묵묵한 희망의 색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58호 12면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박수근을 한 조각씩 지니고 살아간다. 고향집, 시골, 장터, 그리고 이런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소박한 정경의 기시감. 이런 것들의 유래는 모두 박수근(1914~1965)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월 21일, 박수근의 탄생 98주기를 기념하며 박완서(1931~2011)의 『나목』(민음사, 1만1000원)을 골랐다. 박수근과 박완서라니! 이름만으로도 근사하지 않은가?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34> 박완서의『나목』

『나목』은 우리 문화사에서 보기 드문 미술과 문학의 행복한 조우의 순간이다. 박완서는 박수근을 모델로 한 이 소설로 데뷔했고, 박수근은 박완서의 소설을 통해 영원히 서가를 장식하는 기념비적 존재가 되었다. 박수근과 박완서는 한국전쟁의 한복판, 용산의 PX에서 만났다. 한 사람은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환쟁이였고, 또 한 사람은 초상화 주문을 받는 점원이었다. 후에 그 환쟁이가 한국 최고의 화가가 되리라는 것을, 그 어린 점원은 한국 문단의 거목이 되리라는 것을 그때 어찌 알았겠는가? 『나목』이 발간된 것은 1970년. 화단에서 박수근에 대한 본격적인 재평가가 있기 전의 일이니 박완서의 안목이 깊다고 할 수밖에 없다.

나는 박완서 문학이 가진 위대한 상식의 힘을 사랑한다. 박완서에게는 ‘인간이라면 그 순간 응당히 그래야 할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다. 그것은 세속적인 도덕과 사상을 뛰어넘는 위대한 것으로 세상에 대한 폭넓은 통찰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의 근간이 된다. 박완서는 박수근의 그림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이 소설의 주요 모티브는 ‘색채’로, 박수근의 그림이 소설의 중요한 전제가 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박수근의 39나무와 여인39

소설의 주인공이 본 시대의 색은 회색이다. 모든 것이 피폐해진 전쟁기의 절망적인 회색의 삶. 하지만 그 속에서도 청춘은 ‘황홀한 빛들’에 대한 꿈을 버릴 수 없다. 그 꿈은 ‘어리석지 않게 선량한 눈’을 가진 화가 옥희도(박수근을 모델로 한 인물)와의 은밀한 사랑으로 폭발한다. 예술이 유보되고, 청춘이 유보된 두 사람의 사랑은 시대가 허락하지 않은, 삶을 ‘재미있어 하고 싶은’ 안타까운 욕망의 펄떡거림이다. 소설 속에서는 두 사람의 소소한 밀회를 즐기는 순간만은 빨갛고 노란 색채가 살아나는 것으로 묘사된다.

소설에는 박수근의 그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두 번 나오는데, 소설의 전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처음 그림을 보았을 때 주인공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채색의 불투명한 부연 화면”이었다. 꽃도 잎도 열매도 없는 ‘한발(旱魃)에 고사한 나무’를 그린 그림. 그 나무는 ‘잔인한 태양 광선도 없이 말라 죽은’ ‘태생적인 고목(枯木)’이었다. 피폐한 시절을 살아갔던 꿈 없는 사람들의 모습에 다름 아니었다. 절망적인 회색의 삶을 거부하는 주인공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실망스러운 그림이었다.

그러나 50~60년대, 박수근의 작품을 낯설게 보았던 것은 젊은 박완서만이 아니었다. 박수근의 화풍은 당시 화단의 주요 화풍과 거리가 멀었다. 박수근이 그린 농민들은 당시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관변에서 권장되었던 ‘향토색’적인 소재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 독특한 질감, 단색조에 평면성이 강조된 독창적인 기법은 지나치게 새로워서 낯설어 보였다.

박수근은 미술계에 학연도 지연도 없었다. 그 말 많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계속 응모했던 것은 그것이 그가 미술계에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수근은 12번 응모해 초기 세 차례 낙선, 단 한 번 특선, 그리고 여덟 번 입선한 만년 입선 작가로 남았다. 평론가 이경성과 최순우 외에 그의 작품을 제대로 알아보는 한국 사람들은 당시에 없었다.

박수근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다시 그림을 보게 된 것은 10여 년이 흐른 후 1965년 화가의 유작전에서다. 소설에서 박완서가 언급하는 작품은 ‘나무와 여인’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소설 속 주인공은 못견디게 아렸던 청춘과 한 시대의 의미, 그리고 박수근의 작품세계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지난날 ‘한발(旱魃) 속의 고목’이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의 나목(裸木)”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나목이 헐벗을지언정 의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봄에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무채색의 단조로움은 절망의 색이 아니라 박수근의 성품 같은 묵묵한 희망의 색이었다. 박완서의 탁월한 통찰이다.

박수근이 그린 마을 풍경은 어디라고 꼭 집어 말할 수가 없다. 강원도 사람이건, 서울 사람이건, 부산 사람이건 그의 그림 앞에 서면 그저 각자 ‘우리 동네’를 떠올린다.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아내 김복순은 몇 시간씩 모델을 서주곤 했지만 박수근은 그 고운 얼굴을 그리지 않았다. 그저 하얀 무명 한복을 입은 한 여인, 어려움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는 여인을 그렸을 뿐이다. 박수근은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을 그려야 한다는 극히 평범한 예술관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평범하다지만 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예술관인가?

박수근 덕분에 한국 사람들은 근대화 이전의 돌아가고 싶은 고향의 풍경, 만나고 싶은 고향 사람들의 원형적인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박수근은 한국적인 촉감을 현대적인 시각 언어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가장 한국적인 서양화가’였다. 박수근은 스스로에게 아름다운 돌, 미석(美石)이라는 호를 붙일 정도로 우리나라의 옛 석물들을 사랑했고, 그 “아름다움을 조형화에 도입하고자” 애썼다. 우리가 보는 바탕화면의 오톨도톨한 질감과 단순하고 우직한 선은 이러한 그의 노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2월 말의 창 밖 풍경은 아직 메마르다. 봄에 새잎을 틔우기 위해서 전지를 한 가로수들은 상고머리를 한 옛날 시골 아이들처럼 껑충하다. 저 나무들을 메마른 겨울 나무가 아니라 “봄에의 믿음”을 가진 나목으로 볼 수 있게 해준 사람은 박완서다. 지금 박수근의 그림을 닮은 익명의 나목들은 말없이 새봄을 기다리며 속 깊은 나이테를 늘려가고 있을 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