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기] '고통도 삶의 일부' 8월 1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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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호>
고통도 삶의 일부입니다 2000년 08월 01일
오늘도 거의 하루종일 통증과 싸웠습니다. 통증을 조금이라도 잊어버릴 수 있게 뜨게질도 해보고 보고싶던 책도 사 놓았지만 아무것도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암이라는, 나와는 평생 상관없을 것만 같던 병의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고 방사선, 항암을 하고 다시 재발, 그리고 나서 한방병원, 이제는 중국의 어느 병원의 약을 먹고 있습니다.
제 병은 직장암입니다. 그것이 이제는 폐와, 골반 그리고 우리 아무도 알 수 없는 어느 곳에 퍼졌다고 하는군요. 벌써 1년하고 8개월째입니다. 발견당시 이미 3기 말이었으니, 어쩌면 아직까지 살아있는게 신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수술 할 때 항문을 꿰매버리고 인공항문을 장을 끌어내어 왼쪽 아랫배에 만들었습니다. 관장으로 세척하고 있지요.

항문쪽에 통증이 아주 심해서 앉지를 못합니다. 그저 한쪽 엉덩이뼈와 다리뼈를 의자에 걸치고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렇게 글을 쓰고 싶어졌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통증으로 악악 소리를 질러대다가, 진통제를 한알이라도 안먹으려고 버티고 버티다가 요즘 내가 느끼는 것을 말로 좀 해보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하루는 제 인생의 모든 날과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땐 희망도 가져보고 기운도 차려보지만 밤이되면 몸의 모든 진이
빠져버립니다. 하긴 모든 사람의 하루가 그렇지 않을 까요.

오늘은 남편이 늦는군요. 저는 5살 난 아들하나와 33살 난 큰 아들이 하나가 있습니다. 제가 통증에 몸부림치며 이제는 가고싶다, 죽고싶다고 내질러버리다가 금방 내자신이 내 입을 막아버리는 이유가 되는 사람들입니다.
가족이 없다는 생명도 없습니다. 가족이 없는 환자는 일찍 죽습니다. 아니, 병이 없어도 죽습니다.

이제 가끔씩 제 얘길 해보려 합니다. 만약 건강하시다면 제 글을 읽고 건강에 신경 쓰셨으면 하구요, 아프시다면 나보다 저사람은 더하구나, 하고 위로받으시길 원합니다.
만나서 정말 반가왔습니다.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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