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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철의 여인’으로 아카데미 주연상 유력 메릴 스트리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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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메릴 스트리프는 대처 전 총리와 닮은 외모를 만들기 위해 코를 만들고 보철과 가발을 착용했다. 촬영을 끝내고 보철을 떼어낼 때가 가장 기분좋은 순간이었다고 한다. 그는 “80대의 대처를 연기하기 위해 등을 구부리고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고 말했다. [필라멘트 픽처스]

‘철의 여인’이라 불린 마거릿 대처(87) 전 영국 총리. 바늘 하나 안 들어갈 것 같은 정치인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아내이자 엄마로서, 그리고 한 여성으로서의 어찌 고통스러운 게 없었을까. 23일 개봉하는 영화 ‘철의 여인(The Iron Lady)’은 대처의 철갑 같은 외피 속에 감춰진 고독을 들여다본다.

 영화에서는 식료품집 둘째 딸 대처가 성별·계급의 장벽을 부수고 영국의 첫 여성총리에 오르기까지의 성공스토리가 그려진다. 하지만 남성중심 사회에서 그가 느낀 고립감, 권좌에서 내려온 뒤 겪는 삶의 무상함, 남편을 잃은 상실감이 더욱 부각된다.

 ‘철의 여인’은 인생성찰 드라마에 가깝다. 대처를 둘러싼 정치적 평가에서도 한발 비켜선다. 대처가 매 순간 고독한 결단을 내리는 과정에 집중한다.

영화 대사처럼 총리 재임 11년은 그에게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는 삶”이었다. 독단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이익집단·여론조사에 끌려 다니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는 장면에서는 강인한 리더십이 빛난다. ‘대처보다 더 대처 같다’는 평가 속에 2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닥극장에서 열릴 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유력후보로 떠오른 메릴 스트리프(63)도 대처의 리더십을 적극 평가했다. 총선·대선을 앞둔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도 크다. LA타임스 등 외신에 실린 스트리프의 인터뷰를 정리했다.

 -대처의 리더십을 주목하는 이유는.

 “대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릴 때마다 지금 당장은 미움을 받아도 다음 세대는 고마워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게 리더가 명심해야 할 점이다. 리더는 당장의 인기를 위해 근시안적 결정을 내리지 말고, 장기적 관점에서 고민해야 한다.”

 -대처와 정치적 성향이 다르지 않나.

 “진보주의자인 내가 보수정치인인 대처의 정책을 좋아할 리가 있나. 정치색에 상관없이 대처가 보수적인 영국 정계에서 이뤄낸 일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대처는 입만 살아있는 정치인은 아니었다. 자신의 철학에 따라 행동하는 정치인이었다.”

 -대처 역을 제안 받았을 때 든 생각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전후 궁핍과 재건의 시기를 살아온 한 여성의 삶을 추적하는 일이 꽤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철의 여인’ 뒤에 숨겨진 ‘인간’을 끄집어내고 싶었다. 사랑, 상처, 영광, 좌절 같은 드라마 말이다. 대처의 정치적 결정보다 그로 인해 치러야 했던 대가에 더 관심이 많았다.”

 -영국배우, 스태프와 작업은 어땠나.

 “첫 리허설 때 많이 긴장됐다. 멋진 영국배우 40여명이 거기 있었는데 여자는 나 혼자였다. 대처가 처음 보수당 회의에 참석했을 때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싶다. 미국인은 나 한 명밖에 없었다. 이방인이었던 셈이다. 그 점이 되레 용기를 줬다.”

 -대처의 40여 년 인생을 연기했는데.

 “가슴 떨리는 도전이었다. 촬영이 연대순으로 진행되지 않아 매일매일이 정말 전쟁 같았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내가 오바마 대통령 같은 지도자가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인가’ 생각했다. 대처가 느꼈을 부담을 상상만 해도 숙연한 기분이 들었다.”

 -대처를 빼닮았다는 평가다.

 “대처처럼 먹고, 숨 쉬고, 생활하려고 했다. 내 인생 전체를 돌아보는 기회였다. 지금 여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영화는 꽉 찬 인생을 산 인물이 지는 해처럼 점차 가라앉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말 시적이지 않은가.”

 -감독(필리다 로이드)도 여성이다.

 “그는 사람들의 말에 늘 귀 기울이지만 자신의 목적지를 바꾸진 않는다. 여성들이 집단을 이끌 때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또는 여성성을 잃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하면 리더십이 무너진다.”

◆철의 여인=1979년부터 90년까지 영국 총리를 지낸 마거릿 대처의 별명. 노조 파업·포클랜드 전쟁 등의 난제를 정면돌파하며 강인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대처는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함께 냉전을 종식시킨 지도자로도 평가받는다. 90년 주민세와 유럽통합을 둘러싼 내각과의 불화로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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