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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대통령의 경제관료 질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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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본격적으로 '경제' 를 챙기기 시작했다. "경제가 어렵다" 고 인정한 데 이어 "IMF 초심으로 돌아가자" 고 강조하고 있다.

경제 관료들을 질책.독려하는 한편 전직 경제부총리 등으로부터 의견을 듣는 기회를 마련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도 보인다.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한광옥(韓光玉)비서실장도 경제 브리핑을 듣는 등 부쩍 신경을 쓰는 분위기다.

'경제 위기론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데 왜 갑자기 신경을 쓰게 됐나' 하는 의구심은 들지만, 뒤늦게나마 대통령이 우리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불행 중 다행이다.

우리 경제가 당면한 최대 걸림돌 중 하나는 '정치' 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金대통령의 지적대로 일부 경제 관료들의 낙관론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국민이 피땀 흘려 되살려놓은 경제를 다시 위기국면으로 몰아넣은 데는 정책 당국자들의 책임이 크다.

1백10조원을 쏟아붓고도 여전히 엉망인 금융개혁을 비롯, 기업개혁 등에 대한 경제팀의 성적표는 낙제점이다.

특히 대우자동차.한보철강 매각 등에서 보여준 협상력 부재와 미숙함, 팽배한 보신주의, 그리고 공기업의 도덕적 해이는 국민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는 점에서 뼈를 깎는 자성과 개혁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경제가 이 꼴이 된 게 경제관료들만의 탓인가. 보다 근본적인 책임은 정치에 있다. 대통령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반도체 호황, 닷컴으로 대표되는 벤처 거품에 현혹돼 "외환위기는 극복됐다" 고 앞질러 선언해 버려 국민이 허리띠를 푸는 결과를 초래했다.

잇따르는 대내외의 경고음은 무시한 채 엄청난 비용이 드는 대북(對北)사업에 주력하고 경제를 등한히하니 멍든 경제의 본질을 고치지 못한 채 오늘의 위기상황을 맞은 게 아닌가.

정치권은 더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당리당략과 정쟁에 매달려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고 있다. 이러니 1백조원이 넘는 내년 예산안에 대한 심의는 시작도 못하고 있다.

금융지주회사법.국민연금법.최저임금법.조세특례제한법 등 국가경제.국민생활과 직결된 각종 법안들도 몇달째 잠자고 있다. 정치가 이 꼴이니 나라 경제의 대외 신인도마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가 가라앉는다면 무슨 힘으로 북을 도울 것인가.

지금 우리 경제는 기로에 서 있다. 회복에 필요한 수많은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정부.기업.국민이 '이번이 마지막 기회' 라는 각오로 힘을 모아야 한다.

여기에는 대통령의 솔선수범과 정치권의 변신 노력이 필수적이다. 金대통령은 두어달 전에도 경제팀에 대한 질책과 함께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 고 강조한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달라진 흔적은 별로 없었다. 이번만은 절대로 일회성이 돼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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