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유학 베트남男, 北여성에 푹 빠져 30년간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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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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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녀를 보고 내 아내가 됐으면 좋겠다 생각했지요."

1971년 북한 평양에서 유학하던 베트남 남성 팜 녹 칸씨는 비료 공장에 다니던 북한 여성 이영희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당시 그의 나이 23세. 이씨는 한 살 연상의 여인이었다. 이들은 북한 당국의 감시 속에서도 몰래 사랑을 이어갔다. 유학 일정이 끝난 칸씨는 홀로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이씨를 향한 사랑은 베트남에서도 계속 타올랐다.

두 사람은 편지를 통해 마음을 나눴고 칸씨는 베트남 스포츠팀 통역 담당으로 일을 하며 북한을 몇 차례 방문했다. 칸씨는 이씨를 베트남으로 데려오려 했지만 79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양국 관계가 악화되면서 불행이 시작됐다. 92년 이후로는 이씨의 서신마저 끊겼고 북한 당국은 "다른 남성과 결혼했다" "사망했다"고 거짓말하며 포기하게 했다.

그러나 칸씨는 이를 믿지 않았다. 당시 베트남 국가주석, 외교부와 접촉해 끈질기게 설득하는 등 정성을 쏟았고 마침내 당국의 허가를 받아 이씨를 베트남으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2002년, 이들은 하노이에서 700여명의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칸 씨는 54세, 이씨는 55세였다. 당시 이 소식은 국내외 언론에 소개돼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그러다 14일(현지시간) 영국 BBC가 현재 60대 노부부가 된 이들의 근황을 전했다. BBC는 이들의 현재 사진을 공개하며 "노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길을 걷거나, 칸씨의 낡은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다니는 모습을 하노이에서 종종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소개된 이들의 운명 같은 러브스토리는 전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사진=BBC]

이씨는 최근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연애하고 재회하기까지 30년이 넘었고 이제는 할머니가 다 됐다(웃음)"며 "1년 반 정도 연애를 했다. 헤어질 때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못 가졌지만 사랑이라는 게 마음대로 안됐다"고 말했다. 또 "30년 동안 이 사람은 장가도 안 가고 나한테 계속 편지하면서 그렇게 30년을 보냈다"고 전했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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