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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서 얻은 아이디어로 정책 이끈 최선아양

중앙일보

입력

최선하양이 강남 노인종합복지회관에 설치된 자동제세동기(AED) 옆에서 청소년 대상 AED교육에 필요성에 대해 쓴 보고서를 보여주고 있다.

 강남구는 지난해 가을 지역 중·고교 8곳에 자동제세동기(AED)를 설치했다. 설치된 학교는 중학교 4곳(도곡중·중동중·압구정중·봉은중)과 고교 4곳(휘문고·청담고·현대고·수도전기공고)이다. 강남구청은 AED를 활용한 응급교육을 실시하는데 올해 3890만원의 예산까지 편성했다. 청소년들이 학교 교육과정에서 응급처치방법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다. 예전엔 사회복지나 의료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일부 성인들만 AED를 활용한 간단한 응급처치 교육을 받는데 그쳤다. 이를 확대해 학교 밖 대외활동이 많아진 요즘 청소년들도 AED를 배워 현장에서 벌어지는 갑작스런 사고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기초자치단체의 이 같은 청소년 대상 응급처치교육 정책의 시행은 한 여고생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아이디어는 올해 청심국제고를 졸업하는 최선하(19·서울 송파구잠실동)양이 제기한 제안이다. 자신의 경험담을 담아 강남구 복지도시위원회 유만희 의원에게 한 통의 e메일을 보냈다. e메일은 학교에서도 응급교육 수업을 마련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엔 응급의료와 응급구호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체육이나 여가활동을 할 때 응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청소년들의 대처능력이 부족해 아까운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응급의료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자동제세동기(AED) 등 심폐소생술을 (청소년도)할 수 있는 응급장비를 학교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응급구호에 대한 안전의식도 높이고 청소년 누구나 AED를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교육도 이뤄져야 합니다.
 
 요즘엔 학교마다 봉사시간이 있어 학생들이 노인복지관이나 장애인복지시설 등에 봉사를 나갈 때가 많습니다. 이런 응급구호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한다면 현장에서 뜻하지 않게 발생하는 응급상황에 대해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강남구가 AED를 각 학교에 공급하고 학생들 교육에 앞장선다면 응급교육이 활성화될 수 있으며 전국적인 파급효과도 클 것으로 생각돼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됐습니다’라고. 이런 최양의 제안을 바탕으로 유 의원은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보건소와 구 교육지원과에 설명했다. 이와 함께 학교에 AED를 설치하고 학생 대상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이를 토대로 의회에서 제안해 정책으로 채택?마련된 것이다.

고교 응급구조 교육 제안 위해 보고서도 펴내

 최양이 AED의 학교 보급과 청소년 교육을 제안하게 된 데엔 봉사활동에서 겪은 경험 때문이었다. 고1 때 매주 주말마다 서울 강남 노인종합복지회관의 치매노인 보호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였다. 여름 무더위에 한 할머니가 혈압 상승으로 갑자기 쓰러졌다. 구급차가 복지회관에 도착할 때까지 생명을 유지시킬 응급처치가 절실했다. 다행히 성인 자원봉사자들 중 한 명이 AED를 사용해 위급한 상황을 넘겼다. 할머니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 때 깨달았어요. 만일 현장에 나 혼자였다면 할머니를 살리지 못했을 거라고. 청소년들도 응급교육을 받는다면 청소 등 단순한 역할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 사건 직후 적십자를 찾아가 하루 동안 AED 교육을 받고 자격증도 땄습니다.”
 
 이에 머물지 않고 최양은 경험을 보고서(『고등학생을 중심으로 한 응급구조 활성화 방안-자동제세동기(AED) 보급 확대 및 활용을 중심으로』)로 작성했다. 학교의 응급처치 교육 개설을 제안하기 위해 연세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선영씨의 도움을 받아 실태 조사를 벌였다. “설문조사를 벌여,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으면 위급상황 시도움을 주려고 적극 나설 수 있다는 응답자가 많다는 결과를 도출했어요. 이를 바탕으로 AED기기 설치 개수보다 응급교육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보고서에 실어 구에 제출해 정책을 마련할 수 있었어요.” 최양은 보고서를 영어로 작성해 지난해 한국콘텐츠학회 국제학술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 결과 최양은 노인복지분야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10월 강남구청장상을 수상했다.

 이는 최양이 생물과 화학에 관심을 갖고 활동한 성과이기도 하다. 인문계 성향을 가졌던 최양이 한 과학탐구대회에 우연히 나갔다가 재미를 느끼면서 이후부터 과학 공부에 매달렸다. 실력은 부족했지만 흥미 하나만으로 관련 대회에 참여하면서 실력을 쌓았다. 학교에선 저소득층 아동에게 과학실험을 가르치는 과학잡지동아리를 운영하거나, 영어과학잡지에 학생기자로 활동하면서 경험도 쌓았다. 그렇게 꾸준히 노력한 덕에 고3 때 한림원 예비선도과학자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고 이종욱(전 WHO사무총장) 박사처럼 세계보건기구에서 일하는 것이 제 꿈이에요. 과학 지식과 나눔 정신을 발휘하는 현장에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자동제세동기(AED, Automated External Defibrillator)=심폐소생을 위한 응급장비로, 환자의 피부에 전극을 부착하고 전기펄스로 전기충격을 심장에 보내 심방이나 심실의 세동(심근(心筋)의 여러 부분이 무질서하게 수축하는 심장 조율. 심장판막증·심장경화증·심근경색 때 나타나는 증상)을 제거하는 기계. 심전도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음성 안내장치에 따라 사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심장마비 증세가 일어나면 8분 안에 응급처치를 해야 생명을 살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한다. 이후 시간이 1분씩 지체될수록 생존가능성도 10%씩 낮아진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는 미국심장협회(AHA)와 적십자를 통해 교육을 하고 있으며, 일본과 유럽에선 운전면허자격증을 취득할 때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

<박정식 기자 tangopark@joongang.co.kr 사진="김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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