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실제 모습 보여주고 싶었어요"

중앙일보

입력

최근 '흥행 대박' 을 터뜨리고 있는 〈공동경비구역JSA〉의 시나리오 공동 집필자인 정성산(鄭成山.31)씨.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원의 2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鄭씨는 1994년 평양연극영화대학 영화연출학과 4년 재학 중 김일성(金日成)주석 사망으로 총동원령이 내려져 휴전선 최전방에 배치된 뒤 한밤에 보초서며 라디오로 남한방송을 몰래 듣다 들켜 1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죄수 호송차량이 굴러 극적으로 탈출, 북한 국경을 넘은 뒤 베이징.하바로프스크.호치민.홍콩 등을 전전하다 천신만고 끝에 한국땅을 밟게 됐다.

"이 영화는 나의 혼이 담긴 작품" 이라는 그는 "이념적 굴레를 벗고 북한군의 '실제'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싶었다" 고 소회를 밝혔다.

-시나리오 작업 참여 계기는.
"지난해 초 제작사에서 북한군 관련 대사의 자문을 구해와 살펴보니 사실성이 너무 떨어졌다. 그래서 내가 그 부분을 다시 쓰겠다고 했고 이를 제작사가 받아들였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문제였나.
"우선 북한에서 '그렇습네다' '와 그럽네까' '내레~' 같은 표현은 안쓴 지 오래다. 상업성도 좋고 친숙함도 좋지만 진정 영화적 가치를 지니려면 사실성이 우선 아닌가. 의상도 50년대 군복이었다.

모조리 새로 맞추라고 했다. 또 당초 오경필 중사(송강호 분)는 메마르고 딱딱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북한군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 아닌가. 따뜻함과 리얼리티를 살리고 싶었다."

-가장 인상에 남는 부분은.
"정우진 전사(신하균 분)는 군복무 때 나의 모습을 그대로 살린 캐릭터로 무척 애착이 간다. 초코파이와 구두약은 실제 귀순한 뒤 가장 쇼킹했던 문화적 충격이었다. 원래는 맛동산과 군화끈이었는데 감독님께 얘기해 바꿨다. 송강호의 연기도 훌륭했다. 그의 공이 크다."

-촬영 에피소드는.
"남북한 군인들이 탄피 갖고 공기놀이 하는 장면에서 탄피 하나가 섰다. 전혀 대본에 없던 상황이었는데 '어, 섰네' 라는 애들립이 절로 터져나왔다. 이 대사로 남북한 군인들의 화해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부수효과를 얻었다."

-북한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는데 직접 메가폰 잡을 생각은 없나.
"삶 자체에서 작가이자 감독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 5년쯤 후엔 가능하지 않을까. 휴머니즘이 가득 담긴 영화를 찍는 게 꿈이다. 나는 영화는 장인정신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에서는 영화찍기가 매우 힘들다. 갖가지 수련과정을 통과해 '쟁이' 로 인정받아야 감독이 될 수 있다. 반면 남한은 너무 상업주의에 빠져 있다."

- '귀순' 이란 꼬리표가 부담되진 않나.
"큰 부담이었다.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지만 현실은 내게서 귀순이란 단어를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당당히 꼬리표를 달기로 했다. 진실되고 싶었다. 동료 귀순자들의 아픔을 나홀로 외면하고 싶지는 않다. "

鄭씨는 귀순한 뒤 KBS 코미디작가로 활동했으며 임권택 감독 연출부 생활 등 충무로 바닥도 경험했다.

현재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4년에 재학 중이며 올초부턴 북한음식 제조업체도 운영하는 등 남한에서의 '제2의 인생' 을 충실히 가꿔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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