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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Weekly]'JSA' 흥행기록 ‘쉬리’ 바짝 추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공동 경비구역 ‘JSA’는 ‘기획력의 승리’라는 표현이 적절히 어울린다. 추석이라는 시기에 맞춰, 그리고 현재 한국 사회를 연이어 관통하고 있는 민족적 이벤트의 뒤를 이으며 개봉하기 때문이다.

***남북 화해 무드에 편승한 영화?

'볼웃음'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일까? 우리말로 하면 '미소'가 된다. 그럼 볼웃음이 어느 나라 말인가 하면, 북한에서 쓰이는 단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선 어감이 재미있는 북한말을 쓰는 게 일종의 유행이 되고 있는 듯하다. 체제 유지가 우선시 되었던 과거에 비해 최근엔 조금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민족은 이데올로기보다 중한 것" 이라는 인식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 세인들이 갖는 북한에 대한 관심과 나름의 호의는 이제까지 북한 사회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해 왔던 한국 사회의 모든 억압과 법적 장치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놓는 실정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는 이렇듯 최근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는 기묘한 기류에 편승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제작 당시부터 화제를 낳은 바 있다. 실제 판문점을 모델로 오픈 세트를 짓고, 그곳에서 영화의 절반 이상을 촬영했으며, 슈퍼 35밀리 촬영기법을 사용했다. 캐스팅도 호화롭다.

'내 마음의 풍금'의 이병헌, CF와 드라마에서 주가를 한껏 높인 이영애, 그리고 '쉬리'와 '넘버3'의 송강호 등이 출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작은 명필름. '해피엔드'와 '섬' 등 주로 저예산 한국영화에서 튼실하게 기반을 마련한 바 있는 명필름이 30억원의 제작비를 들였다는 점에서도 '공동경비구역 JSA'는 기대를 모으기에 부족함이 없다.

줄거리는 이렇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북측 초소에서 초소병이 살해되고 총상을 입은 남한 병사 이수혁(이병헌)
이 발견된다. 이 사건을 두고 남과 북은 다른 주장을 펼치는데 남북의 병사들 역시 엇갈린 진술만 반복한다. 과연 진실은 어느 곳에 있을까?

중립국 감독위원회는 수사를 담당할 한국계 스위스인 소피(이영애)
를 파견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사건 당사자인 이수혁 병장과 북한의 오경필 중사(송강호)
를 만나 사건의 정황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사건 현장엔 이수혁 병장 외에 다른 인물이 있었다는 추측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건은 어이없는 대목에서 풀린다. 소피는 사건을 담당하면서 이수혁 병장과 오경필 중사가 서로 ‘적’임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인간적 교류와 우정을 쌓아왔음을 알게 된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오가며 인간적 정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곧 발각되고 모든 일이 탄로날 지경에 이르자 서로에게 총을 들이대는 극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었던 것.

영화 초반에서 제시되었던 비밀은, 그리고 처참한 총격전 현장은 영화가 끝나갈 무렵 비로소 제시된다. 이제까지 이수혁 병장과 오경필 중사의 행적을 뒤밟고 있던 관객들은 당시의 상황을 뒤늦게 파악할 수 있다.

***허술한 미스터리, 뛰어난 연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동경비구역 JSA'는 '현명한' 영화다. 사회적 이슈와 맞물리면서 이 영화는 시의적절하게 보는 이의 심금을 적셔놓는다. 어떤 면에선 '쉬리'와 비교할 만한 구석도 있다. 영화 '쉬리'가 분단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멜로와 액션이라는 두 축으로 승부를 걸었다면,
'공동경비구역 JSA' 는 다소 엉뚱하게도 코미디적인 요소를 적극 도입한다.

물론 영화의 출발점은 미스터리에서 비롯된다. 북한 초소에서 발생한 총격전 사건은 관련자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어딘가 미심쩍은 점이 발견되면서 점차 베일을 벗기 시작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러한 미스터리는 큰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 중반 이후부터 남한과 북한 병사들 사이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그들간의 정감 어린 대화와 간혹 웃음을 자아내는 기발한 상황들이 손쉽게 해설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엔 이런 기발한 상황이 여럿 있다. 예컨대, 남한 병사가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자 북한 병사에게 "살려주라"라고 애절하게 목숨을 구걸하거나, 북한 병사가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광석이는 왜 그렇게 일찍 죽었다냐"라고 읊조리는 대목들이 그렇다. 이같은 대사들은 훈훈한 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도 기대치를 상회한다.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에서 선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을 오가는 송강호의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이영애도 많은 부분이 영어임에도 무난하게 대사 처리를 하고 있으며 다른 조연급 연기자들의 연기도 좋다. 특히 송강호는 '쉬리'라는 대작에서 비교적 연기가 서툴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공동경비구역 JSA'에선 전작의 부족함을 만회한 듯하다.

하지만 영화적 완성도에 있어서는 의혹을 받을 만한 구석도 없지 않다. 영화의 미스터리 구조가 너무나 허술하게 무너지고 있고, 결말로 갈수록 탄탄한 논리보다 민족이라는 대전제에 '호소'하는 태도가 그렇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박찬욱 감독의 세 번째 영화다. 박찬욱 감독은 '달은 해가 꾸는 꿈'(1992)
, '3인조' (1997)
등을 만들면서 영화적 완성도보다는 영화 마니아 출신이라는 점에서 평단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던 바 있다.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분단은 비극이라기보다 아이러니다. 공동경비구역은 단순한 분단이 아닌 그 이상의 상징적 장소로서 의미를 갖는다. 그 안에서 선을 넘으면 농담은 비극이 된다"라고 설명한다.

이 영화에선 음악이 중요하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를 비롯한 노래들은 영화의 호소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에서 남북한 병사들은 이제까지의 우정에 금을 긋고, 서로 총을 겨누게 되는 역설적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상대에게 총탄을 퍼붓는 이들의 행동은 폭력적이거나 영웅적 태도로 보이기보다 민족적 아픔을 통렬하게 웅변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의 얽힌 고리를 현명하게 건드리고 있으므로. '공동경비구역 JSA’의 홈페이지(http://www.cy berjsa.com) 역시 방문해볼 만하다. 이 영화의 홈페이지는 단순하게 영화 자료를 업데이트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착실하게 구비하고 있다. '판문점/공동경비구역의 역사' 같은 메뉴가 그렇다.

또 이 홈페이지가 재치있는 점은 기존의 한국영화 홈페이지들이 자료 기능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었던데 비해 커뮤니티와 엔터테인먼트 기능이 주가 되는 점이다.

남북한 언어비교도 그렇고, '사이버 내무반'이라는 메뉴를 클릭하면 곧장 커뮤니티로 연결되고 있다. 영화와 함께 온라인 상에서 홈페이지를 둘러본다면 영화에 숨겨져 있는 의미들이 새롭게 발견될 것이다.

김의찬 문화평론가<nuage01@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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