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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지각변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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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인터넷 생존실험 김태호·송선경 부부 세계의 어린이들을 컴퓨터 화면에서 떨어지게 만든 소설 ''해리 포터와 불의 술잔'' .디지털과 인터넷 확산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세상이 변해도 결국은 전통이 승리한다" 며 환호했지만 이 소설이 삽시간에 인기를 끈 것은 디지털 기술 때문이었다.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은 소설이 나오기도 전에 50만부가 넘는 주문을 받았고 영어권에서 이 소설 판매량의 절반이 온라인을 통해 이뤄졌다. 이제 아날로그도 디지털 기술이 뒷받침돼야 빛을 발휘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세계적으로 파급되는 디지털 혁명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4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1급 장애인인 홍수정(30) 씨. 그에게 디지털은 새로운 삶을 열어준 신기(神器) 나 다름없다.

홍씨는 지난 3월 인터넷으로 항공권 예약접수를 받는 대한항공 텔레마케팅센터 재택근무 요원으로 선발됐다. 난생 처음 정식 일자리를 얻은 것이다.

하루에 6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그는 "내 힘으로 돈을 벌어 생활할 수 있게 됐다" 며 "정상인의 세계에 성큼 다가선 기분" 이라고 말했다.

지난 26년간 집 밖 나들이를 거의 해본 적이 없는 홍씨. 바깥 세상은 그에게 너무 불편했고 가혹했다.

그러나 5년 전 486급 컴퓨터를 통해 접한 사이버 세상은 달랐다. 클릭 한번으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받아들이는 새로운 디지털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홍씨는 육체적 속박을 벗어난 자유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겨울 인터넷으로 사귄 채팅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지방여행에 나섰다. 휠체어를 탄 채 대구와 울산까지 내려갔다.

홍씨는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신기할 정도" 라며 "디지털 기술이 나를 다시 태어나게 했다" 고 말했다.

대학 4학년인 윤원섭(22) 군은 디지털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n세대다. 등교길 그의 가방에는 노트북 컴퓨터와 개인용 정보단말기(PDA) , 디지털 카메라, 보이스 펜(디지털 녹음기) 이 들어 있고 손에는 휴대폰과 MP3플레이어를 들고 있다.

디지털 제품을 몸에 지니기 위해 그는 3년 동안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5백20만원을 모두 쏟아부었다. 매달 휴대폰과 초고속 인터넷 요금으로 15만원씩, 용돈의 대부분이 꼬박꼬박 나간다. 이에 비해 윤군이 입고 있는 옷과 구두.양말.안경 등은 50만원이 채 넘지 않는다. 소비구조로 보면 그는 ''디지털 인간'' 인 셈이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 윤군은 지난 7월 독한 마음을 먹고 한달동안 휴대폰과 인터넷을 멀리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친구.동아리와 격리돼 있다는 심리적 불안과 극심한 금단현상. 정신과 의사는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또래들과 자주 접촉하라" 고 충고했다.

디지털이 n세대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경제적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 경제(GDP) 에서 디지털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9.4%. 반도체 특수라는 요인도 한몫 했지만 한국의 디지털 산업비중은 미국(8.2%) 보다 오히려 높은 수준이다.

국내 디지털 산업 종사자도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3백52만4천여명에 이르러 전체 취업자의 19.9%를 차지하고 있다(한국노동연구원 통계) .

디지털은 외환위기 때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1998년 경제성장률은 2.0% 하락했으나 디지털 산업이 4.3% 성장해 경기후퇴를 저지한 것이다. 99년에는 디지털 분야가 14% 성장해 경제회복을 이끌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윤순봉 상무는 "향후 10년간 국내 디지털 산업은 연평균 13%씩 증가하고 실질 경제성장률도 이에 힘입어 6.3%에 달할 것" 이라고 말했다. 디지털을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지목한 것이다.

그는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디지털 산업의 비중은 갈수록 높아져 2010년에는 19.3%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디지털 산업에 대한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수익모델 부재에 따른 닷컴 기업 위기론은 국내 디지털 업계의 목을 조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인터넷기업협회의 이금용 회장은 "닷컴기업의 수익모델은 시간 문제에 불과하다" 는 낙관적인 입장이다.

그는 "인터넷에 익숙하고 전자상거래의 경제적 효과를 체험한 n세대가 5~10년 후 직장을 갖는다" 며 "그들이 안정된 수입을 바탕으로 구매력을 행사하면 인터넷 업계의 매출과 순익은 순식간에 늘어날 것" 이라고 장담했다.

한국은 이미 디지털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초고속 인터넷망과 인터넷 사용자수.휴대폰 가입률.도메인 등록건수 등에서 세계의 선도적 위치에 서있다.

정보통신 기반시설에서 한국은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한 것이다. 터보테크의 장흥순 사장은 "디지털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생존을 위한 필수" 라고 강조했다.

한국에 불어닥치고 있는 디지털 혁명의 파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거세질 것이란 예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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