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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주리 기자의 ‘캐릭터 속으로’ (1) 드라마 ‘해를 품은 달’ 김수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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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드라마 ‘해품달’에서 젊은 임금 이훤 역을 맡은 김수현.

막말로 ‘짐승남’이 몸을 보여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요즘 여심들이 흔들리고 있을까. 그렇다고 배시시 웃으면 나비가 날아들 것 같은 ‘꽃미남과’도 아닌데.

 이훤-. 조선시대 가상의 왕이다. 상투부터 버선까지 ‘왕버전 한복 풀세트’로 온몸을 겹겹 싸고 있지만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는 가릴 길 없다. ‘앓이’라는 표현이 지겨워도 한 번만 더 쓰자. 요즘 20~30대 여성 시청자라면 ‘훤앓이’에서 비켜나 있는 이 별로 없을 테니.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이 시청률 40%를 바라보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드라마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원작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그리고 이 신드롬 속에는 이훤(김수현)이 있다. 8년 전 첫사랑이자 세자빈이었던 연우(한가인)를 잃은 후 모든 일에 냉소적으로 변해버린 왕. 그런데 얼음 같기만 했던 그가 무녀 월이 된 연우를 다시 만나 “미혹되었다, 허나 떨칠 수가 없구나”라고 마음을 고백한다. 연우의 마지막 서찰을 읽고선 “얼마나 괴로웠겠느냐”라며 오열한다. 그 차가움 속의 순정이라니.

 그런데 이 남자, 아니 이 전하의 진짜 매력은 일할 때 나온다. 젊은 왕을 무시하며 자기들 뜻대로 다 해먹으려는 늙은 신하들에게 차가운 미소를 날리며 할 얘기는 다 하는 왕이다. 그렇다고 섣불리 나서지도 않으니 이것 참, 매력적이다. 젊음의 패기에 때를 기다리는 현명함까지 갖췄다. 열정은 넘치지만 사리분별 부족한 요즘 많은 청춘들의 ‘빈 구석’을 채우고 있다.

 ‘뿌리깊은 나무’의 세종대왕 이도(한석규)가 경연을 열어 중무장한 논리로 신하들을 엎어 치고 메칠 때만큼 농익은 모습은 아니지만, 지난해 말 안방을 달궜던 ‘뿌나’의 향수를 자극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리고 배우 김수현(24)은 아직 20대 아닌가.

 그러고 보니 김수현, ‘드림하이’ 속 삼동이를 눈여겨본 적이 있다. 언젠가 큰일을 낼 것 같았다. 지난주 방송에서 “드디어 김수현이 울었다”며 ‘김수현 오열’이 화제가 된 건, 그가 ‘매서움 서린 눈에서 흐르는 눈물의 힘’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는 뜻일 터다.

 그러니 훤, 아니 김수현이 “내 심간에 자리하려 하는 이 고통을 네가 잠재워줘야겠다. 할 수 있겠느냐”라고 월에게 물을 때, 그의 누나·이모 팬들은 TV 앞으로 바짝 다가가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갈 순 없나요.” (드라마 OST ‘시간을 거슬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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