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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축구장 패싸움 최소 79명 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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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일(현지시간) 이집트 포트사이드에서 열린 현지 프로 축구 마스리와 알아흘리의 경기 종료 후 양 팀 팬들이 서로 충돌하는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격심한 충돌이 벌어진 뒤 좁은 경기장 출구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70여 명이 숨지고 1000여 명이 부상했다. [포트사이드 신화=연합뉴스]

이집트 축구 경기장에서 1일(현지시간) 난투극이 벌어져 80명 가까이 숨지는 최악의 유혈 참극이 발생했다. 발단은 정치와 무관한 ‘축구 훌리건’들의 싸움이었지만, 경찰과 군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진압하지 않은 데다 지난해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 퇴진 시위 이래 가장 큰 유혈 사태여서 정치적 파장이 예상된다.

 이집트 국영TV에 따르면 이날 이집트 북동부 항구도시인 포트사이드에서 열린 홈팀 마스리와 수도 카이로에 연고를 둔 알아흘리 경기에서 양 팀 팬들이 집단으로 충돌했다. 지금까지 집계된 사망자는 최소 79명, 부상자만 1000여 명에 달한다. 부상자 가운데 150여 명은 위독한 상태여서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충돌은 마스리가 리그 우승 후보 팀인 알아흘리를 3대 1로 대파하면서 시작됐다. 패배한 알아흘리 측 서포터들이 상대 팀을 모욕하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이에 분노한 홈팀 관중이 경기장에 난입했다. 이들은 돌과 둔기로 원정 팀 선수와 응원단을 공격했다. AFP 통신은 “일부 관중은 단검으로 무장한 상태였다”고 보도했다. 달아나던 관중이 좁은 출구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압사자가 다수 발생했으며, 경기장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알아흘리 팀의 주전 선수인 무함마드 아부 트리카는 현지 언론에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어 나갔다. 이건 축구가 아니라 전쟁”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집트 정부는 “이집트 축구 역사상 최악의 관중 폭동이 발생했다”며 “사인의 대부분은 뇌진탕 등과 좁은 공간에 인파가 몰려든 데 따른 질식사”라고 밝혔다. 당시 경기장에는 약 2만2000명의 관중이 있었다. 이 중 2000여 명이 알아흘리 서포터였다.

 사태는 폭동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 등 치안부대가 폭력을 적극적으로 진압하지 않는 모습이 현지 방송을 통해 중계되면서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알아흘리의 팬클럽 관계자는 “경찰이 당시 상황을 본체만체했다. 구급차 도착도 늦어 우리가 숨진 팬들을 직접 옮겼다”고 증언했다. 이 관계자는 마스리 측 서포터들은 경기 중에도 상대방 선수들에게 돌을 던졌고, 폭동이 일어난 뒤에도 경찰이 출입구를 열지 않아 알아흘리 팬들이 경기장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번 사건이 단순한 팬들의 충돌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AFP는 “지난해 ‘아랍의 봄’ 당시 시위 진압에 나섰던 경찰과 치안부대가 국민의 반감을 샀고, 정권 붕괴 후 사기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태”라며 “폭동 당시 진압명령조차 내려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집트에서는 지난달 25일 민정 이양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과도정부를 이끄는 군부가 시위대에 발포하는 등 유혈 사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군부와 경찰이 “과거와 같은 혼란이냐, 아니면 군부 주도의 안정이냐”를 부각시키기 위해 유혈 사태를 방치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의회 제1당인 무슬림 형제단의 국회의원인 에삼 알에리안은 “이번 사건은 무바라크 전 정권의 잔당이 보낸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수십 년간 철권통치를 하다 쫓겨난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잔당들이 민심을 흔들기 위해 이번 일을 계획했다는 것이다. 폭도들 중 무기를 소지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 역시 음모론의 근거가 됐다. 시기도 절묘하다. 무바라크 축출 후 국회(하원)가 지난달 24일 첫 개회했고, 29일은 시민혁명 1주기였다. 이집트 당국은 모든 축구 경기를 취소하고 즉시 국회 임시회의를 소집했다. 포트사이드와 수도 카이로 등지에서는 2일 새벽 군부 과도정부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역대 대규모 축구 유혈폭동 사태

● 1964년 페루-아르헨티나 월드컵 지역 예선전/318명 사망

● 1996년 과테말라-코스타리카 월드컵 예선전/78명 사망

● 1968년 아르헨티나 프로축구 보카 후니오르스-리베르 플라테 경기/74명 사망

● 1971년 스코틀랜드 아이브록스 경기장 기둥 무너지는 사고/66명 사망

● 1985년 유러피언컵 결승전 유벤투스-리버풀 경기/39명 사망

응원전이 유혈극으로 번져
150명 위독, 희생자 늘 듯
경찰 방관, 정치적 음모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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