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 ‘착한병원’ 주민 2300명이 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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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2일 강원도 원주의 ‘한살림1호’ 수퍼를 방문해 물건을 구입하고 있다. 한살림은 원주한살림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매장으로 생산자로부터 직접 먹을거리를 공급받아 조합원에게 제공한다. 이곳 조합원은 5829가구며, 5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2일 오후 강원도 원주시의 밝음의원.

 평일인데도 10여 명의 환자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은 환자 1명에게 최소 6분 이상 진료상담을 해주는 게 강점이다. 대신 진료 환자는 하루 70명으로 제한한다. 그저 조금 더 친절한 동네 의원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곳 주인은 의사 개인이 아닌 2300가구에 이르는 지역 주민이다. 병원의 공식 이름은 원주의료생활협동조합.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서비스가 가능하다. 원주의료생협 변상훈 사무국장은 “의사의 세세한 상담에 만족을 느끼는 환자들이 많이 찾아와 1시간 넘게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환자가 몰린 덕에 사회적 기업인 원주의료생협은 지난해 11억6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0년(9억5000만원)보다 23% 성장한 것이다. 덕분에 지난해 3600만원의 이익금을 올려 사회에 기부할 수 있었다. 올 12월부터는 원주의료생협과 같은 협동조합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조합 설립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의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박재완 장관이 이날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 원주를 찾았다. 원주는 협동조합을 지향하는 19개 지역단체로 구성된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가 꾸려질 정도로 협동조합 활동이 활발하다. 박 장관은 “협동조합은 시장 중심의 경제체제와 정부 주도의 경제체제의 양 극단이 갖는 한계를 보완해준다”며 “우리는 두레·품앗이 등 협력의 DNA가 무척 발달한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이 있어 이를 잘 살리면 세계 어느 나라보다 협동조합이 발전할 토양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협동조합 성공사례는 미국의 ‘선키스트’다. 선키스트는 미국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주의 6000여 감귤 농가를 조합원으로 하고 있다. 품질과 브랜드 관리를 엄격히 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로열티 수입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거머쥔 스페인 축구클럽 FC 바르셀로나도 협동조합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 클럽의 주인은 축구를 사랑하는 17만3000여 명의 출자자다. 이들은 투표로 구단주 격인 회장을 뽑는다.

 전문가들은 협동조합이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조합원 간 신뢰를 꼽는다. 무조건 1인 1표제로 주요 사항을 의결하는 협동조합 특성상 조합 내에서 의견을 달리하는 그룹이 여럿 생긴다면 운영 자체가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남상호 연구위원은 “선키스트가 성공한 데는 ‘구성원 간 원만한 합의가 깨지면 개인의 이익도 사라진다’는 인식이 모든 조합원 마음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며 “단시간에 이익을 얻기 위해 일부 조합원이 신뢰를 깨면 협동조합제도가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명지대 법학과 이종훈(상법) 교수는 “조합원이 회사 운영에 주도권을 갖는다는 긍정적 동기가 협동조합 성공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며 “이를 부각해 이익보다 신뢰 중심으로 한 조직 운영을 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원주=최선욱·정종훈 기자

협동조합 주식 한 주에 투표권이 하나인 상법상의 주식회사와 달리 출자액수와 관계없이 1인 1개의 의결권과 선거권이 있다. 그래서 민주적이다. 정부의 협동조합기본법은 협동조합에 법인격을 부여했다. 농협법 등 기존 개별법에선 30~1000명의 조합원이 있어야 했지만 12월부터는 5명만 있으면 설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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