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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소형원자로가 대안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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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송치성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

원자력은 우리나라 전체 전력소비의 35%를 생산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간 안전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사태 이후 부정적 사회여론이 더 커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원자력은 지구온난화 같은 문제 속에서 현실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 30여 년 전에 건설됐고, 수백 년 만의 기록적인 강진과 함께 쓰나미가 동시에 발생하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지 못한 실수가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초기 컨트롤타워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아 사고가 크게 번졌고 재앙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그 원인은 원자력 분야의 정책 입안과 의사결정 과정에서 투명성이 부족하고, 이로 인해 소통 부재와 사회적 불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원자력 분야 엔지니어들은 원전에서 발생할 중대사고 확률이 10만분의 1이라고 주장하나 이는 모든 부품이 정상 운용되고 가동이 완벽할 경우를 상정한 것이다. 아무리 안전한 기계장치도 이를 운용하는 인간의 실수에 의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병원에선 의사가 환자를 바꿔 수술한 적도 있고, 메스를 꺼내지 않고 봉합하는 사고도 일어난다. 이런 사고가 원자력 발전에서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다.

 현재 우리의 경우 국가적 차원에서 원전산업을 육성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만들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성에 대한 의혹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해 발목이 잡힌 형국이다. 또 국제적으로는 고준위 폐기물 처리를 포함한 비확산 문제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원자력 발전시설보다 더 안전하며, 인간의 실수를 차단할 수 있는 소형 모듈(SMR·Small Modular Reactor) 원전 개발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기출력 300㎿e급 소형 원자로인 SMR은 전력 공급이 끊겨도 공기를 이용해 원자로를 자연 냉각하는 방식으로 안전성이 높고 해안이 아닌 내륙에도 건설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이미 SMR 개발사업이 시작돼 웨스팅하우스사의 경우 2015년 이전에 미국 규제기관으로부터 인허가를 취득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중국과 손잡고 상용화 사업에 착수했다. 미 의회는 SMR 관련 예산을 심의 중에 있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3월 “7년 동안 2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SMR을 개발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책의 일관성 부재 등으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하는 쾌거를 이룬 바 있고, 안전 기능이 강화된 한국형 원전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원자력 플랜트 산업의 경우 발전사업자와 금융기관·정부·규제기관 등의 협력과 함께 국민 여론 수렴이 중요하다. 안전과 관련된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해질 때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원자력의 경우만큼은 안전이 최우선이고, 그 다음이 경제성이란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안전과 관련해선 밀실행정이 사라져야 한다. 이런 문제들이 원만하게 해결돼 한국 원전에 대한 신뢰가 국내외적으로 쌓일 때 최근 이슈로 등장한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문제도 국제사회의 협력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원자력 안전과 비확산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 비정부기구(NGO)의 참여를 허용하는 것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처럼 에너지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는 에너지 생산비용을 단지 발전단가 같은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환경·지리적 비용을 포함한 국가 안보적 차원에서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차세대 성장동력 중 하나인 원자력 산업 육성 기회를 놓치지 말고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송치성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