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엔 '실버테크' 바람

중앙일보

입력

"허리.다리 등이 아파 바깥 바람 한번 쐬기도 어렵고, 도와 줄 자식들은 객지에 나가 있고…."

돈이 많으나 적으나 이래저래 불편한 것이 많은 게 노년층이다. 그래서 고령 인구가 많은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들은 국가차원에서 노인들이 자식 등 남의 도움 없이도 집 안팎을 자유롭게 이동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실버테크''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올 하반기 들어 처음으로 유엔이 정한 기준에 따른 고령화사회로 접어 들었으나 실버테크 개발 움직임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복지 뿐 아니라 기술측면에서도 노년층은 여전히 뒷전에 밀려 있는 것이다.

유엔은 65세가 넘는 인구가 전체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로 보는 데 우리나라는 지난 7월 1일 현재 7.1%(3백37만여명) 에 달했다.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것을 계기로 국내외 실버테크 개발현황을 살펴본다.

◇ 로봇 휠체어〓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뛰어 다니지는 못해도 최소한 원하는 곳은 가고 싶어한다.

유럽연합이 개발한 실내외 겸용 로봇 휠체어와 실내 이동 로봇팔은 이들 노인들의 행동반경을 크게 늘렸다.

유럽연합은 실버테크 개발도 공동으로 하고 있다. 로봇 휠체어는 다양한 기능을 하는 로봇팔이 달려 있는 것이 특징. 팔 걸이 옆에 달린 로봇 팔은 사람의 팔처럼 다양한 역할을 한다.

각종 상황에 맞춰 입력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며, ''컴퓨터 눈'' 으로 사물을 본다. 이를 이용, 음료수 병을 들어 잔에 부은 뒤 입에 대주며, 서류 뭉치를 들어다 줄 수도 있다.

이 휠체어는 자주 드나드는 슈퍼마켓이나 동네 양로원 등 목적지만 지정하면 휠체어가 자동으로 길을 기억해 뒀다 찾아가는 기능도 있다. 집으로 오는 길도 마찬가지다. 기억력이 나쁜 노인들에겐 아주 편리한 기능이다. 디지털 지도와 위치확인시스템이 장착돼 있어 가능하다.

유럽연합과 일본은 20㎝ 정도의 턱을 넘어 갈 수 있는 휠체어도 개발 중이다. 팔다리가 아주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실내용 이동 로봇팔도 관심을 끈다. 어른이 아이의 가슴 부분을 안아 이리저리 옮기 듯 이 로봇도 그와 비슷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천정에 로봇을 이동시키는 레일이 있어야 한다. 유럽연합과 일본에서 개발했다.

◇ 건강 모니터링 시스템〓노인들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기 때문에 매일 수시로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다고 일부러 병원을 갈 필요가 없다. 일상 생활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자신의 건강상태가 주치의에게 전송되도록 주거 환경 등이 설계되기 때문이다.

일본 후지(富山) 현에 있는 ''웰페어테크노하우스(WHT) '' 에는 욕실.침실.변기 등에 혈압.심박수.배뇨량과 속도, 체중 등 다양한 생체기능을 측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이 시스템들은 자동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잠을 자거나 목욕, 또는 화장실에서 ''볼 일'' 을 볼 때 자동으로 측정, 주치의에 전화선으로 자료를 보낸다. 이 노인용 첨단 집은 21세기 고령자 주거의 모델하우스가 될 전망이다.

유럽연합이 개발 중인 ''첨단 변기'' 도 관심을 끈다. 변기에서 체중.배설량.배설 속도 등을 비롯 피부 혈액 순환.다리 혈압.혈관 탄력성.변 특성 등을 한 순간에 측정할 수 있도록 개발하고 있다.

◇ 배회 방지 장치=GPS가 실버테크에도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피부에 넣는 칩을 개발 중이며, 유럽연합은 ''삐삐'' 와 같은 휴대용 위치확인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기억력이 떨어진 치매 노인들은 집에 가는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 장치를 사용하면 어느 위치에 있는 노인이 있는지 즉시 알 수 있다.

휴대용 모니터를 활용하면 목적지를 혼자서 찾아 갈 수 있도록 안내가 가능하다.

피부에 넣는 칩의 경우 미국의 민간업체가 올해 안에 개발할 계획인데 생체 전원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건전지를 교체할 필요가 없다. 이 칩은 건강정보 전송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 선진국에서는 자동 세면대, 긴급 상황통보 시스템 등의 개발을 마치고 상용화에 나서고 있다.

◇ 국내는 불모지〓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는 실버상품은 욕창 방지용 쿠션, 지팡이.안마기 등 생활보조용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의료 보조장치 역시 가정용 혈압계나 보청기 등이 보급되고 있을 정도로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부분 영세한 기업들이 만들기 때문에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시스템을 개발하기 어려운 탓이다.

현재 고령자용이나 장애자용 재활보조기구 매출규모가 10억원 이상인 업체가 관련업체의 6.3%이고, 5천만원 이하인 업체가 46%에 이른다. 관련 기술이나 산업이 거의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임용택 교수는 "노인들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실버테크의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며 "산업적으로 볼 때도 고령화 사회가 급진전되는 21세기에는 최대 유망산업으로 급부상할 전망"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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