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초수급자 등치는 사업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에 사는 기초수급자 곽모(58)씨는 조만간 6개월치 생계보조금(월 27만원) 162만원을 반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국세청 소득자료에 곽씨가 지난해 상반기에 한 달 평균 168만원씩 번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곽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긴 했지만 당뇨와 고혈압 탓에 자주 나가지 못했다. 소득도 매달 40만~50만원가량으로 주민센터에 꼬박꼬박 신고했다.

 그런데 인력회사 측이 곽씨에게 지급한 돈의 세 배가 넘는 액수를 임금으로 줬다고 국세청에 신고한 것이다. 이 때문에 곽씨는 이달 초 생계보조금 환수대상자로 결정됐다. 이 같은 사정을 확인한 주민센터 사회복지사가 “사업주에게 가서 소득자료가 잘못됐다는 확인을 받아오면 환수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곽씨는 거절했다. 그는 “일자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늘 인력업체 사장한테 잘 보여야 하는데 어떻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부터 임시·일용직 기초수급자 13만 명의 소득(2011년 1~6월) 자료를 대조하면서 곽씨 같은 억울한 사정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임시·일용직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가 탈세(脫稅) 목적으로 임금을 부풀리거나 허위로 신고하면서 기초수급자에게 불똥이 튀고 있다. 생계보조금이 끊기거나 깎이는 것이다.

 서울 금천구에 사는 김만수(가명·70)씨는 틀니 비용을 마련하느라 지난해 초 건설 현장에서 간간이 일당 5만원을 받고 일했다. 그런데 사업주가 신고한 김씨 소득은 일당 10만원으로 6개월간 총 180만원이었다. 이 때문에 김씨도 생계보조금 환수 대상이 됐다. 금천구청의 엄미정 주임은 “기초수급자 가정의 고교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이력서를 냈던 사업장에서 고용은 안 하고 학생 명의만 도용해 소득신고를 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보건복지부는 기초수급자가 사업주로부터 소득 확인서를 다시 받아오면 생계보조금 환수나 삭감 조치를 취하지 않을 방침이다.

 하지만 고용 시장에서 약자인 기초수급자들이 소득 자료를 확인하기 쉽지 않아 피해를 감수하는 경우도 많다. 복지부 임근찬 복지정보과장은 “일한 적이 없는데 소득이 신고됐다고 한 사례가 상당히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향후 6개월 단위로 기초수급자의 임시·일용직 소득 자료를 확인하면 이 같은 피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국세청 송기봉 원천세과장은 “임금을 과장하거나 허위로 신고한 사업주에겐 가산세를 징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