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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푼이 아쉬워 … 친인척에 손 벌리고, 경진대회 또 나가고, 과외도 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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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신생 업체 두잇서베이의 최종기(30) 대표가 창업경진 대회 상장을 들어보이고 있다. 그는 몇몇 경진대회에서 받은 상금을 전부 사업자금으로 털어넣었다. [최승식 기자]

청년 창업. 이명박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추진하는 일자리 대책이다. 창업이 이뤄지면 창업자 스스로뿐 아니라 다른 젊은이들에게까지 일자리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정부가 청년 창업 붐을 조성하는 데 힘을 쏟으면서 창업에 대한 대학생들의 관심은 높아졌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전국 27개 대학생 800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셋 중 둘인 67%가 ‘창업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고 했다. 청년 창업이 쏟아질 태세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 기업을 세운 청년 창업자가 느끼는 현실은 고단하기만 하다. 자금이 부족해서다. 돈 가뭄을 메우려고 청년 창업자들은 별의별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온라인 설문조사 관련 정보기술(IT) 벤처업체인 ‘두잇서베이’. 2010년 신용보증기금이 주최한 ‘대학생 우수 창업 아이템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탄 최종기(30) 대표가 설립했다. 최 대표까지 8명이 일하는 이 회사는 올 1월 매출 3000만원을 예상한다. 갓난쟁이 벤처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기는 가시밭길이었다. 창업 기업에 투자는커녕 융자도 꺼리는 세태 때문이었다.

 최 대표는 신보 주최 창업경진대회 수상 직후 사업자금을 대출받으러 신보를 찾아갔다. ‘신보 주최 대회에서 상을 받았으니 문제 없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매출 증빙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창업 경진대회에서 상을 탄,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려는 업체가 매출이 있을 리 만무한데도 그랬다. 최 대표는 “ 창업경진대회를 주최하는 공공기관으로부터도 돈을 빌리는 게 힘드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다행히 다른 사업으로 매출을 올려 신보에서 돈을 빌리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생각다 못해 수상한 아이템을 조금씩 더 개선해 다른 창업경진대회에 출품해 상금을 타 기업을 꾸렸다. 그렇게 받은 상금이 6000만원에 이른다. 그래도 모자라 개인적으로 친인척에게 손을 벌렸다.

 ‘라이브리’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관련 IT업체의 김범진(27·연세대 화공과4) 대표. 댓글과 광고를 연계시키는 사업 아이디어로 2010년 엔씨소프트와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주최한 ‘대한민국 대학생 벤처 창업경진대회’에서 대상을, 고용노동부가 주최한 ‘소셜 벤처 전국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연거푸 받았다. 그런 그에게도 ‘에인절 투자’는 남의 나라 얘기였다. 그보다 현실적인 길을 택했다. 공동 창업자들과 함께 고교생 과외지도를 해 직원들 월급에 보탰다. 기업에서 받은 장학금까지 회사 운영자금으로 돌리고 등록금은 따로 대출을 받아 냈다. 현재는 직원 21명을 둘 정도로 성장했다.

 친인척의 돈을 사정사정해 빌려 쓰고, 각종 창업경진대회를 들락거리며 상금으로 연명하고, 직원 월급을 마련하고자 고교생 과외지도까지 하고…. 에인절 투자자가 절대 부족한 대한민국 청년 창업계의 현실이다. 구글이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공동 창업자 앤디 벡톨샤임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10만 달러(약 1억1000만원) 수표를 받고, 그로부터 6개월 뒤 벤처캐피털로부터 2500만 달러(약 280억원)를 추가 투자받은 것은 그야말로 먼 나라 얘기다.

 청년 창업자들은 자금난 해소 방법으로 정부 지원에 목을 매고 있다. 한 해 수백만~수천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에 신청해 융자를 따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경쟁이 만만치 않다. 그러다 보니 정부 제출용 사업계획서를 써주고, 면접지도를 해주는 ‘창업자금 컨설팅’ 사업까지 등장했다. 네이버의 ‘청년창업 1000프로젝트 컨설팅’ 카페가 대표적이다. 1년간 매달 50만~100만원을 받는 서울시의 ‘청년창업 1000프로젝트’를 따내도록 도와준다는 카페다. ‘5만원에 부가세 별도, 불합격하면 100% 환불’이라고 광고까지 하고 있다.

 일부는 아예 국내 투자를 포기하고 해외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커피가 식으면 저절로 데워주는 컵’이란 아이디어로 지난해 중소기업청 창업캠프에서 최우수상을 탄 오유진(20·여·고려대 기계공학부1)씨가 그런 경우다. 설 직전 수상자들과 함께 실리콘밸리를 둘러보고 온 오씨는 “국내에선 아이디어만 갖고 투자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란 것을 알기에 처음부터 미국의 에인절 투자자를 만나기로 마음먹었다”고 덧붙였다.

 청년창업을 독려하는 정부가 투자자를 만날 기회를 만들어 달라는 요구도 있다. 창업기업 ㈜유캡의 조헌(29) 대표는 “실제 투자자들과의 대면이 이뤄지는 해외 전시회에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줬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따기 쉬운 음료수 병마개’ 아이디어로 2009년 대한민국 대학생 벤처 창업경진대회에서 우승한 바 있다.

 청년 창업가들에겐 척박하기만 한 국내 투자환경. 그래도 열정으로 뚫고 나가는 젊은이들은 있다. ‘하노이의 탑’이란 두뇌 계발 완구로 지난해 중기청 주최 ‘대한민국 실전창업리그’에서 우수상을 받은 김주안(22·성균관대 건축학2)씨가 가진 돈은 실전창업리그 예선과 본선 상금 1200만원뿐이다. 완구 생산시설을 갖추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위탁 생산해줄 업체 20여 곳을 찾아다녔다. 결국 열 번 이상 만난 한 업체의 사장이 1000개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다음 달 중순께 제품이 나온다.

◆특별취재팀=장정훈·채승기·김경희·노진호·이가혁·하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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