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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1992년 클린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 2012년 클린턴 “더 큰 문제는 일자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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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다시 일터로
빌 클린터 지음
이순영 옮김, 물푸레
248쪽, 1만5000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다시 일터로(Back to Work)』라는 경제비평서를 펴냈다.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출간된 후 곧바로 번역됐다. 이에 대해 전문가와 경제부 기자의 공동 서평을 싣는다. 책의 무게를 제대로 가늠해보기 위해서이지만 무엇보다 저자가 민주당 소속이란 점을 감안해 치우치지 않는 리뷰를 하기 위해서다. 국제경제 전문가 김용범 금융위원회 국장과 중앙일보 금융팀장 나현철 기자가 머리를 맞댔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스캔들 메이커였다.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 친구 회사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 등으로 여러차례 특별검사 조사도 받았다. 탁월한 능력과 인간적 매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미국인들로부터 미움을 받은 이유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시간이 지나면 ‘구관이 명관’이 된다.

 요즘 클린턴을 ‘명관’으로 부활시킨 건 경제다. 최근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지만, 미국 경제는 아직 대공황 이래 최장기간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대, 최고의 경제라는 자부심에도 큰 생채기가 났다. 대안에 목마른 사람들이 과거의 ‘성공시대’를 돌아보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미국 근로자들이 “미국은 일자리를 원한다”는 피켓을 들고 뉴욕의 유니온 스퀘어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일의 시위지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흔히 보는 장면이 되었다. [뉴욕 AP=연합]

 클린턴 시절, 미국 경제는 장기호황을 구가했다. 경제는 잠재성장률을 넘어 연 평균 3.8%씩 성장했다. 일자리도 쑥쑥 늘었다. ‘좋았던 시절(Go-go days)’로 기억되는 1960년대 이후 최고의 호황이었다. 그가 경제에 관한한 역대 가장 뛰어난 대통령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이유다.

 그런 그가 경제 처방전으로 내놓은 게 이 책이다. 쪽수가 그리 많지 않고 서술도 딱딱하지 않아 쉽게 읽힌다. 커뮤니케이션의 대가답게 수식과 논리보다는 경험과 설득으로 독자를 이해시키려 한다. ‘클린터노믹스(Clintonomics)’의 이론적 배경에 관한 책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그의 재임 때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UC버클리 교수,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등의 저서들이다.

 표제가 암시하듯 책의 목표는 하나로 관통한다. 일자리 창출이 그것이다. 1992년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선거구호로 현역 대통령을 이기고 집권에 성공한 그는 2012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여야 후보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더 큰 문제는 일자리야, 바보야!’라고.

 이를 위해 그는 ‘작은 정부’라는 환상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한다. 시장개입 최소화와 감세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정부론은 논점이 틀렸다고 본다. ‘문제는 정부의 크기가 아니라 효율’이라는 것이다. 생명공학에 집중 투자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든 싱가폴, 초고속인터넷망을 토대로 정보기술(IT) 산업을 꽃피운 한국의 사례도 든다. 그는 줄곧 “필요한 것은 강하고 유연한 정부”이고, “정부개혁을 통해 불필요한 재정지출은 줄이고 공정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 조세수입을 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도한 민영화로 국민 부담과 재정적자를 늘리는 의료보험 체계에 대한 국가개입 확대도 주문한다. 

 민주당 내에서도 진보파에 속하는 클린턴답다. 그렇다고 ‘당파적’ 주장으로 매도하긴 어렵다. 세계 최강대국을 8년간 이끈 경험이 균형감각으로 책에 녹아 있다. 그는 ‘부자증세’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기업의 고용유지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감세는 적극 찬성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은 성장이라고도 강조한다. 여유 있는 노인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복지체계 개편도 제시한다. 본인의 실수도 인정했다.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흘려들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철저하게 미국적이다. 전직 미 대통령이 쓴 미국 경제 얘기다. 하지만 마냥 남의 얘기로는 들리지 않는다. 그가 제기한 이슈들은 곧 한국의 고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권에선 지금 한창 성장과 복지, 증세와 감세,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둘러싼 논쟁들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탄탄한 논리와 일관성을 준다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당파적인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수미일관한 이 책을 한번쯤 읽어볼 것을 권하는 이유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새삼스럽게 느끼는 게 있다. 미국이 전 세계를 얼마나 정확하고 치밀하게 한눈에 읽고 있으며 경쟁자들에 대한 철저한 대응전략을 짜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책에 간간이 소개된 한국의 모습은 양면적이다. 한국이 광대역통신망 평균 다운로드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라고 칭찬하는 대목이 있는가 하면, 식량을 살 만한 돈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의 비율이 미국과 함께 16%로 선진경제국가 중 가장 높다고 지적한 대목도 눈에 띈다.

화력발전소 870개 vs 풍력 3300개 … 녹색기술이 일자리 공장

클린턴이 제시한 46가지 경제 해법

미국 경제의 침체가 길어지면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재조명되고 있다. 장기호황을 누리던 클린턴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역대 가장 뛰어난 ‘경제 대통령’으로 꼽히는 클린턴이 『다시 일터로(Back to Work)』라는 책을 펴냈다. 미국이 미래 경제의 주도권을 잡고 자존심을 회복하길 바라는 제안을 담았다.

신간 『다시 일터로』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하는 일종의 경제 난국 해법이다. 미국이 미래 경제의 주도권을 다시 잡기 위한 46가지 해법을 담았다. 전임 권력자가 제시하는 현대판 ‘시무(時務·금선무로 해야할 대책) 46조’라 할만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은행들이 돈을 빌려주도록 장려해야 한다”는 식으로 구체적이며, “현재 미체결 상태에 있는 한국과 콜롬비아, 파나마와의 무역협정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주문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이 21세기에 맞는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하고 녹색기술에서 세계를 주도하며 제조업 기반을 되살리고 수출을 두 배로 늘리는 일이 클린턴이 제안하는 정책목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아이디어들은 고용대책부터 연금 의료 등 사회복지, 국방개혁, 에너지, 교육, 미래성장동력까지 정부정책의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한다.

 그 중에서도 녹색에너지 부분에 대한 정책제안이 제일 많다. 그는 녹색기술이 기후변화 방지에 기여할 뿐 아니라 미래의 성장동력을 선점하는 효과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일자리 창출에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10억 달러를 들여 화력발전소를 지을 때 87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 지는 반면, 태양열 발전소는 1900개, 풍력발전소는 3300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는 식이다. 일자리 창출에 모든 초점을 맞춘 것이다.

 미국 내 제조업기반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해외에서 번 돈을 미국으로 더 많이 들여오도록 과세 체계를 개혁하고, 실업자교육 등을 통해 해외에서 조달했던 인력을 국내인력으로 대체하도록 장려하는 정책도 제안한다.

 특유의 낙관론으로 클린턴은 미국이 다시 한 번 도약하기를 기원한다.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이라며 “새로운 일자리가 늘어나고, 임금이 올라가고, 청정에너지와 생명공학 같은 새로운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미국이 차지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이 재도약하는 길을 찾기 위해 “이념이라는 낡아빠진 확신을 버리고, 우리의 가치와 아이디어, 경험, 꿈을 가지고 미래를 진지하게 논의하여야 한다”는 주문도 눈여겨볼만하다. 민주당원, 공화당원, 무당파, 보수주의자, 자유주의자, 진보주의자 할 것 없이 “진짜 사실에 근거한 진짜 논쟁을 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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