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지속가능한 자본주의를 고민할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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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자본주의가 뿌리째 불신(不信)받고 있다. 큰 위기에 빠졌다. 전 세계적으로 소득 양극화는 깊어가고, 미국의 리먼사태와 유럽의 재정위기에서 보듯 국제 금융시스템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불평등에 분노한 99%는 월스트리트 점령시위에 나서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자본주의는 수명을 다한 것일까? 지난 500여 년간 자본주의 역사를 돌아보면 위기의 역사였다. 호황과 함께 금융위기, 경기 침체, 대공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돼 왔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수많은 위기에도 몰락하지 않고 오히려 진화했다. 그 결과 중상(重商)주의→산업자본주의→수정자본주의→신(新)자유주의로 이어지는 다양한 변신을 거듭해 왔다.

 작금의 재앙도 자본주의 자체의 실패라기보다 정책 실패가 근본 원인이다. 지난 30년간 파생금융상품 거래는 폭발적으로 팽창했지만 금융감독은 따라가지 못했다. 중앙은행들이 장기 호황에 도취해 저금리 정책을 고집한 것도 화(禍)를 불렀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으로 재정적자는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 이머징 국가들에 경쟁력이 밀려난 선진국들은 빚에 의존하는 과거의 소비패턴을 버리지 못했다. 시장 기능을 맹신하는 신자유주의는 적절한 정부 개입마저 봉쇄했다. 이런 총체적인 정책 실패와 탐욕이 자본주의를 위기에 빠뜨린 것이다.

 최근 스위스 다보스포럼 참석자들이 제시하는 처방전에는 세 개의 공통분모가 있다. 우선,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키웠지만 아직 현실적으로 더 나은 대안은 없다는 것이다. 둘째, 정책당국자와 금융종사자, 자본가들의 참회와 솔직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다보스포럼 창설자인 클라우스 슈바프는 “나는 자유시장 경제체제 신봉자이지만,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고백했다. 셋째, 이제부터 자본주의의 대대적인 수선(修繕)과 보완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수술할 방향은 성장과 분배의 두 기둥 가운데 분배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한국도 똑같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 물론 우리 경제지표는 상대적으로 건전한 편이다. 하지만 소득 양극화 추세를 방치하면 사회통합이 위태로울 지경이다. 청년실업은 사회불안의 불씨가 되고 있다. 터져 나오는 복지 욕구에 편승한 정치권의 포퓰리즘도 도를 넘고 있다. 이런 부정적인 측면들이 지나치게 확대되면 언제 체제 불안이 야기될지 모른다. 과부하(過負荷)가 걸린 한국 자본주의도 대대적인 손질이 시급하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시장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고 곧바로 큰 정부로 역행(逆行)해선 안 될 일이다. 오히려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가 대안일 수 있다. 성장 우선에서 벗어나 분배 기능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목소리 큰 집단에 복지예산을 퍼주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오히려 보육과 교육에 초점을 맞춰야 인적자본을 두텁게 하는 생산적 복지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가 나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찾으려면 모두 목소리는 낮추고 머리는 맞대야 한다. 다보스포럼에 귀를 기울이고 해외 전문가들의 다양한 처방전을 적극 참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