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한 은행원 1골·1도움 … 스페인 3부리그 이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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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인 파블로 인판테가 25일(한국시간) 스페인 미란다데에브로에서 열린 코파 델 레이 8강 2차전 에스파뇰과의 경기에서 2-1로 승리한 뒤 관중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미란다데에브로(스페인) AP=연합뉴스]

파블로 인판테(31)는 은행원이다.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서 서쪽으로 80㎞ 정도 떨어진 인구 4만의 소도시 미란다데에브로에 산다. 그는 오전 8시면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시 외곽에 있는 은행에 출근을 한다. 모기지론 및 대출 관련 상담이 그가 맡은 일이다.

 그는 퇴근 후에는 구두를 벗고 축구화를 신는다. 화요일을 빼곤 매일 은행에서 50㎞나 떨어진 축구 연습장을 찾는다. 인판테는 지역 연고팀인 미란데스에서 주장을 맡고 있다. 포지션은 왼쪽 윙어다. 미란데스는 3부리그인 세군다B 소속 아마추어 팀이다.

 올 시즌 인판테의 바람이 이뤄졌다. 아마추어 팀 미란데스가 사고를 쳤다. 미란데스는 25일(한국시간) 홈 경기장(무니시펄 안두바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페인 프로축구 코파 델 레이(국왕컵) 8강 2차전에서 1부리그 팀인 에스파뇰을 2-1로 꺾었다. 미란데스는 1차전에서 에스파뇰에 2-3으로 패했지만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4강에 올랐다.

 미란데스는 올 시즌 1부리그(프리메라리가) 팀들을 연이어 꺾으며 주목을 받고 있다. 1927년 창단한 미란데스는 44년부터 리그에 참가했지만 70여 년간 한 차례도 1부리그에 오른 적이 없다. 국왕컵 최고 성적은 2004~2005시즌에 거둔 16강이었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32강전에서 프리메라리가 전통 강호인 비야레알을 만나 합계 3-1 승리를 거뒀고, 16강전에서도 프리메라리가 소속인 라싱 산탄데르에 합계 3-1로 이겼다. 스페인 스포츠신문 마르카는 ‘안두바의 기적’이라고 보도했다.

 이날 극적인 역전승의 주역은 1골·1도움을 기록한 인판테였다. 미란데스는 후반 시작 1분 만에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다. 그러나 후반 12분 인판테는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추가시간에 얻은 프리킥에선 키커로 나서 세자르 카네다의 결승 헤딩골을 도왔다.

 경기가 끝난 후 6000명의 홈 관중은 경기장으로 쏟아져 내려왔다. 이들은 우승이라도 차지한 것처럼 선수단과 어우러져 승리의 기쁨을 함께했다. 인판테를 무동 태운 사람들은 괴성을 지르며 경기장을 돌았다. 인판테는 “내일 아침에도 은행으로 출근해야 한다”면서도 “평소에는 일찍 집에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지만 오늘은 좀 늦어도 괜찮을 것 같다”며 기쁨을 표현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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