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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만원 버킨백' 싹쓸이한 허름한 중국인 명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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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에서 컨시어지(왼쪽)가 중국 고객에게 사은품과 쇼핑 정보를 설명하고 있다. ‘큰손 중국인’의 쇼핑을 돕는 백화점 컨시어지는 서울의 관광·여행 정보도 알려주는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서울메이트’다.

#지난달 10일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명품시계 ‘파텍 필립’ 매장에 30대 중국 남성이 들어섰다. 그는 6000만원짜리 시계를 구입하며 담당 컨시어지에게 통역과 사은품 수령, 세금환급 안내 서비스를 받았다. 다음 날 아침, 중국인 부부가 백화점으로 와서 물었다. “여기 서비스가 좋다면서요?” 그는 전날 시계를 산 고객의 친구였다. “대접을 잘 받았다”는 친구의 자랑에 매장을 찾았다는 것. 부부는 1억원짜리 시계를 샀다.

 #지난 23일. 4년째 갤러리아 단골 중국 고객이 “크리넥스를 살 차례”라고 컨시어지에게 말했다. 그는 춘절과 노동절에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여행용 티슈를 박스로 사 가곤 했다. 그가 컨시어지의 안내를 받아 내려간 지하 1층 매장 계산대 옆에는 대용량 티슈가 놓여 있었다. 단골 고객이 찾기 쉽게 따로 진열대를 마련한 것. 그는 서비스에 만족하며 돌아갔다.

 ‘VIP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의 쇼핑 친구, 백화점 컨시어지가 주목받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에는 중국·일본 담당 각 4명씩 8명의 컨시어지가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모두 현지에서 대학을 나와 그곳의 언어와 문화에 통달했다. 명품 브랜드의 신제품과 한정상품 안내, 택시 예약과 배웅은 컨시어지의 기본이다. 한채영·이다해·소녀시대 같은 한류 연예인이 입은 옷과 선호하는 브랜드, 강남 일대의 미용실·성형외과 등 요우커가 원하는 모든 정보를 꿰고 있다가 척척 알려준다. 이들과 쇼핑하며 하루에 1억~2억원을 쓰는 단골이 허다하다.

 갤러리아는 2010년 중국어 컨시어지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자 1년 만에 중국인 매출이 일본인을 앞질렀다. 중국어 컨시어지 차하영(30) 매니저는 “일본 고객은 미리 제품 번호를 적어와 계획한 것만 사 가지만, 중국 고객은 컨시어지 의존도가 높다”고 말했다. 바지 한 벌 사러 왔다가 “어울릴 것을 골라달라”고 해 폐점시간까지 재킷과 구두, 액세서리 등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20~30대 중국 여성들에게 컨시어지는 패션 멘토다. 컨시어지 추천대로 옷과 화장품을 산다. 한번은 한 여성 고객이 차씨가 입은 치마를 보고 “예쁘다. 어디서 샀느냐”고 묻기에 “국내 브랜드 ‘아이잗컬렉션’ 제품”이라고 알려줬다. 그는 곧장 매장으로 가서 치마를 색깔별로 15벌이나 구입했다.

 “허름한 중국 고객도 친절히 대하라.”

 컨시어지의 원칙이다. 요우커는 지갑 사정과 차림새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은 수수한 점퍼 차림의 50대 중국 남성 3명이 명품관에 왔기에 컨시어지가 친절하게 안내했다. 이들은 에르메스 매장에서 2000만원이 넘는 ‘버킨백’을 색상별로 고르더니 현금 뭉치를 꺼내 계산했다. “내년에 또 오겠다”며 건넨 명함에는 유명 기업 대표, 공사 사장 직함이 찍혀 있었다.

 요우커는 컨시어지에게 “한국 사람들은 천사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는 ‘고객이 왕’이라는 인식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 오면 컨시어지가 1년 전에 온 고객의 얼굴, 이름, 취향까지 기억하니 감동받는다는 것이다. 컨시어지는 때로 ‘해결사’가 돼야 한다. 단골 요우커들은 한국에서 불편을 느낄 때 가장 먼저 컨시어지를 찾는다. 밤 12시에 전화해 “음식점에 와 있는데 된장찌개를 맵지 않게 끓여달라고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고객도 있다. 2억5000만원을 결제한 고객이 매장에 여권을 두고 가 탑승시간 직전까지 인천공항으로 공수작전을 펼친 적도 있다.

심서현 기자

◆컨시어지(concierge)=호텔 고객 서비스 총괄자. 중세 프랑스에서 성을 지키며 안내하는 ‘촛불관리자’에서 유래했다. 교통·관광·음식점·공연 등 고객이 원하는 모든 정보와 예약 업무를 개인 비서처럼 대신해준다. 최근 중국·일본 관광객이 늘자 백화점에서도 쇼핑 컨시어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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