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매춘 대상 찾아요" 개인사이트에 올라온 글 실체 알고보니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월간중앙 도쿄 특파원 시절 딸 아이를 일본 초등학교에 입학시켰을 때 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난청이라는 장애를 갖고 태어난 딸은 한눈에 봐도 또래 친구들보다 마르고 약해 보였다. 초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의료진과 도쿄도 교육위원회, 위원회가 주선한 전문가들과의 회의를 수 차례 거친 뒤에야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입학 후 학과 지도, 학교생활 문제와 함께 이지메(‘왕따’) 같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학교와 구(區)가 운영하는 언어치료교실, 보호자가 수시로 연락하고 지내기로 약속도 했다.

입학 직후 일본인 담임교사는 같은 반 아이들에게 난청과 보청기에 대해 설명하는 데 필요하니 책 한 권을 추천해줄 수 없느냐며 연락해왔다. 학년 초부터 장애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란다.

언어 치료교실에서 추천한 책을 읽고 담임교사와 친구들은 보청기를 절대 만지지 않는다, 보청기를 끼우고 있는 동안은 절대 물을 뿌리지 않는다, 머리에 충격을 가하지 않는다는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고 했다. 담임교사와 언어치료교사는 주 2회 교환일기를 통해 학교에서 벌어진 시시콜콜한 이야기며, 과목별 수업 진행상황 등을 주고받았다.

가해 학생에 엄격한 일본 학교

주변의 이런 도움 속에서 아이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듯했다. 그런데 몇 달 뒤 딸아이가 “같은 반의 덩치 큰 남자 아이가 나를 밀치거나 때린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담임교사에게서 “언제든 학교에 와서 아이가 생활하는 모습을 지켜봐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터라 어느 날 학교를 방문했다. 멀리서 살펴보니, 한 남자 아이가 딸아이에게 때리는 시늉을 하더니 어깨로 툭 치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즉각 이 사실을 담임에게 알리자 학교 측은 곧바로 회의를 열어 딸아이로부터 가해 학생을 격리하기로 했다는 결과를 통보해왔다. 가해 학생의 보호자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 보조교사를 붙이되 위화감이 조성되지 않는 선에서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 근처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학생이 가정과 학교에서 호된 꾸지람을 들었음은 물론이다.

반면에 우리 딸아이는 언제든 그 친구에게 다가가 말을 걸거나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잔뜩 혼이 나 풀이 죽어있는 가해 학생이 딱해 보일 정도였다. 몇 달 후 감시는 풀렸지만 학년이 바뀌어도 새 담임에 의해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에 대한 관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그가 심한 폭력을 휘두른 것도 아니고,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생 아닌가? 이렇게 선처를 호소하자 담임교사는 “학년과 횟수, 가해 정도에 관계없이 남이 싫어하는 일, 특히 남의 몸을 만지거나 폭행을 가하는 행위는 결코 용납되어선 안 된다”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사소한 갈등이라도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이지메’라면 처벌이 반드시 따라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일본이 이처럼 ‘이지메’에 민감한 것은 일찍이 1980년대부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친구들의 왕따를 견디다 못한 중학생들이 잇따라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90년대 들어 그 대책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주제로 하는 인성교육을 늘리는가 하면 사회성을 키우는 체험활동과 봉사활동 시간을 크게 늘렸다.

초등학교에 학교 상담사와 ‘보호자 상담원’을, 중·고등학교에는 학생 생활지도를 전담하는 ‘학생지도 담당교사’를 둬 체계적인 생활지도에 나섰다. 1985년 15만5000여 건에 달하던 전국 학교의 이지메 발생 건수(문부과학성 전국조사)는 이후 학교와 부모의 지속적인 관심으로 2005년 2만여 건까지 줄었다.

그러나 그 뒤로 다시 증가추세로 돌아섰다. 2010년도 전국 초중고교에서 발생한 이지메는 전년보다 2000여 건 늘어난 7만5000여 건이었다.

문부과학성이 2007년 전국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 파악한 이지메 건수는 총 8만4648건. 학생 1000명 당 7.1명이 이지메를 당하고 있다는 계산이다. 그중 학교 측이 그 사실을 인지한 경우는 40%에 그쳤다. 급기야 일본 정부는 이지메와 전면전을 선포했다.

이지메를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사람까지도 가해자로 규정하고, 피해 학생과 보호자가 희망하면 가해학생을 전학시킬 수 있도록 했으며, 이지메를 방치·조장한 교사는 징계 처분을 받도록 하는 대책도 마련했다. 학교는 이지메를 숨기지 않고 학교평의원 등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그 후 점점 줄어가던 이지메가 다시 늘기 시작한 것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직접적인 폭행보다는 댓글이나 e-메일, 문자 등으로 정신적인 폭행을 가하는 사건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과거 이지메가 주로 중·고등학교에서 벌어졌다면, 휴대전화와 인터넷 사용이 늘어난 요즘엔 초등학교까지 그 범위가 늘어났다.

2010년 10월엔 필리핀 엄마를 둔 군마(群馬)현 기류(桐生)시의 초등학교 6학년생이 친구들의 왕따로 자살했고, 앞서 2006년에도 홋카이도의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이 “친구들의 이지메 때문에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일본 문부과학성 조사에 따르면 2010년도에 자살한 초·중·고등학생 수는 147명으로, 최근 수년 새 매년 150명 안팎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생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이지메로 꼽혔다.

일왕의 손녀이자, 왕세자의 딸(초등학교 4학년)까지 왕따 때문에 한동안 등교거부를 했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왕따는 일본사회 전반적인 기류일지 모른다.

학교와 교사에게 일차적인 책임 있어

그러나 기존의 이지메는 가해자와 피해자·방관자의 3자 구조였다면 인터넷 등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이지메는 더 복잡하고 다양한 데다 어른의 감시를 피할 수 있어 더욱 악랄한 양상이다. 특히 ‘학교 우라(裏)사이트’로 불리는 학교 게시판 등은 아이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장으로 활용되는데, 이곳에서도 특정 학생을 공격하거나 비난하는 글이 계속 늘고 있다.

최근에는 개인 블로그나 프로필 사이트 등에 이름과 생일, 사진 등을 공개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이를 악용한 왕따 사건도 급증한다. 현장 교사가 악질적인 사이트를 발견하고 폐쇄를 해도 금방 다른 사이트를 개설할 수 있기 때문에 임시방편에 그치지 않는다.

2005년 비영리법인(NPO) 인 ‘전국 웹카운슬링 협의회’를 설립한 야스카와 마사시(安川雅史·46) 이사장은 “인터넷을 이용한 악플과 이지메는 남에게 속을 내보이지 않는 일본인에겐 남을 공격하는 최고의 무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정보 공유를 위해 만든 사이트는 이지메의 온상이 되고 있다”며 그 사례들을 소개했다.

사례1 몇 해전 야마가타(山形)현의 여고생 도모미(가명)양은 인터넷 사이트에 자신의 개인 사이트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그의 e-메일 주소와 연락처, 매춘 대상을 찾는다는 글, 야한 합성사진까지 올라 있었다. 며칠 뒤부터는 남성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그는 결국 학교를 자퇴한 뒤 통신제 고교로 옮겼다. 문제의 사이트는 한 PC방에서 개설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례2 지난해 고3이던 사토시(가명)군은 취직에 성공했으나 며칠 만에 합격 취소를 당했다. 기업 측이 학교 게시판에 실린 사토시의 비방 악플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용은 ‘사토시는 매장에서 소매치기한 물건을 학교에서 팔고 있다’, ‘시험 때마다 쪽지를 만들어 부정행위를 한다’는 식의 허위사실들이었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누가 사이트를 개설하고 악플을 올렸는지 알 수 없다는 것. 야스카와 이사장은 “화장실 낙서와 달리 악플은 인터넷상에서 무한대로 증식하고, 24시간 내내 벌어져 기존 이지메보다 5~6배 깊은 상처를 남긴다”고 말했다. 보호자와 교사 등이 인터넷을 알고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지자체들은 민간 인터넷 패트롤을 고용해 유해 사이트를 적발하는 일에 나섰다. 도쿄도는 지난해 실제 피해사례를 중심으로 ‘학교 우라사이트(게시판)’ 대응 매뉴얼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작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그간 일본 정부가 내놓은 이지메에 관한 제언의 공통점은 “이지메를 신속히 해결할 일차적 책임은 교장과 교감·교사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교사와 학교가 이지메를 추방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 어떤 대책도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큰 이슈로 떠오른 청소년들의 왕따 문제의 해결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박소영 중앙일보 정치국제부분 차장 olive@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