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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얼굴] 한국 탁구의 대들보, 유남규

중앙일보

입력

한국이 탁구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첫 계기는 여자탁구대표팀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일이었다.

1973년 4월 10일 유고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 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이에리사(46. 전 현대여자탁구단 감독)
를 주축으로 정현숙, 박미라 등 여자대표팀은 세계 최강 중공과 일본을 3-1로 누르고 구기종목 사상 처음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는 쾌거를 이뤘다.

이때부터 기업과 정부는 탁구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80년대 중반부터 한국 탁구는 세계적인 강국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현정화와 유남규(32. 제주 삼다수 탁구단 플레잉코치)
가 버티고 있었다.

특히 유남규는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남자 단식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 남자탁구의 대표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1968년 부산에서 태어난 유남규는 79년 부산 영선초등학교 4학년 때 단지 운동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처음 탁구채를 잡았다. 탁구를 처음 접한 그였지만 또래의 다른 소년들에 비해 월등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잠재력이 실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뛰어난 기량으로 동년배들을 압도한 유남규는 부산 남중학교 2학년 때 16살의 어린 나이로 처음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그 자체로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를 모았던 유남규는 고1 때인 84년 제7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참가, 본격적으로 대표선수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 맹훈련을 거듭한 유남규는 86년 열린 아시안 게임에서 남자 단체전과 단식에서 중국 선수들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전형적인 왼손 펜홀더 드라이브형인 유남규는 아시안 게임에 이어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이에리사가 세계 정상에 오른 73년 이후 15년 만에 다시 정상에 오른 것이었다. 유남규는 올림픽 제패로 그 해 10월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는 겹 경사를 누렸다.

올림픽을 통해 세계 최고의 탁구 선수로 자리잡은 유남규는 89년 도르트문트 세계대회 혼합복식(현정화)
금메달, 90년 북경 아시안게임 남자단체전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세계 탁구의 지존으로 입지를 공고히 했다.

그러나 영광이 많았던 만큼 시련도 있었다.

91년 유남규는 음주 운전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당시 대표선발전 2차전을 마치고 후배들과 술을 마신 후 운전하다 경찰에 적발된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공인의 음주운전은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온 비난의 소리는 유남규를 힘들게 했다.

유남규는 자신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길은 실력으로 죄를 반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숙과 훈련을 병행하던 유남규는 93·95년 연속 월드 서키트에서 우승하면서 명예를 회복했다.

하지만 97년 유남규는 또 다른 시련을 맞이했다. IMF가 닥치면서 기업들이 제일 먼저 산하 운동단체를 해체하기 시작했고 유남규의 소속팀 동아증권도 이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결국 팀은 해체되고 유남규를 비롯한 동아증권 선수들은 실업자가 됐다.

유남규는 타 구단과 독일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지만 같이 고생한 후배들을 두고 혼자만 살 길을 찾아 갈 수 없었다. 그는 매달 자기 돈을 써가면 후배들과 함께 신생팀을 창단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는 동안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못한 유남규는 후배 김택수에게 대표팀 주전의 자리를 내주었고 ‘탁구신동’ 유승민이 등장했다. 이윽고 방콕 아시안 게임이 벌어지던 98년 12월, 유남규가 대회 중간에 조기 귀국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남규의 조기 귀국은 각종 일간지에 대서특필됐고 탁구계는 떠들썩거렸다. 아시안 게임에서 단 한 경기도 뛰지 못해 충격을 받은 유남규는 은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늘 명예로운 모습으로 은퇴하고 싶었던 유남규는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때 젊은 후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유남규는 자신의 꿈을 이어줄 후배들의 모습에 과감히 태극마크를 벗기로 결심했고 올 1월 17년간 가슴에 달았던 태극마크를 후배들에게 넘겨줬다.

비슷한 시기에 유남규는 오랜 노력의 결실을 보았다. 새로운 팀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한 그의 노력을 알았던지 제주 삼다수가 새로운 탁구단을 창단했다. 유남규는 같이 고생했던 동아증권 후배들과 함께 창단 멤버로 팀에 참여했고 현재까지 플레잉 코치로 활동중이다.

이제 유남규의 꿈은 유승민과 같은 젊은 유망주들을 자신과 같은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로 키우는 것이다. 유남규는 제대로 된 지도자로 활약하고 싶은 마음에 지금 고려대학교 체육학과에서 석사과정을 수학하고 있다. 기술과 심리를 잘 아우를 수 있는 지도자가 유남규의 다음 목표다.

Joins 금현창 기자<lafirst@joins.com>

올림픽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조인스 스포츠에서(http://sports.joins.com/sydney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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