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시드니 빅카드는 여자 400m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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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원주민의 첫 올림픽 금메달이냐, `여자 마이클 존슨'의 인간승리냐.

캐시 프리먼(27.호주)과 마리 조세 페렉(32.프랑스)이 펼칠 여자 400m 라이벌 대결이 뉴 밀레니엄 올림픽 육상의 최고 빅카드로 떠올랐다.

모리스 그린과 매리언 존스(이상 미국)의 우승이 뻔한 남녀 100m가 `비인기종목' 400m의 빛에 가린 것이 처음일 정도로 두 선수간 대결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

프리먼과 페렉의 격돌은 시드니올림픽의 주요 빅카드로서 이미 갖출 요건을 다 갖췄다.

여자 400m 입장권이 본선은 물론 예선경기까지 판매한지 몇 분 만에 매진됐고 세계 언론의 관심 속에 두 선수간 신경전은 갈수록 농도가 짙어져 온갖 화제를 낳고 있다.

프리먼은 애보리진(호주 원주민) 출신으로 92년 처음 올림픽에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97년 아테네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우승까지 항상 이름 앞에 `처음'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선수.

지난해 세비야 세계선수권에서 400m 2연패를 이뤘고 올시즌 최고기록(49초56)도 현재 그의 몫이다. 프리먼으로서는 무엇보다 이번에 첫 금메달을 따야 과거 영국인들에게 짓밟혔던 조상들의 한을 풀고 나아가 인생 목표인 호주 총리 자리를 향한 탄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프리먼의 영광된 오늘은 그러나 페렉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4년전 애틀랜타에서 프리먼을 눌렀던 페렉은 이번에 프리먼의 안방에서 보란 듯 400m 3연패의 금자탑을 쌓고 은퇴하겠다는 각오다. 90년대 중반까지 400m에서 독보적 존재로 군림했던 페렉은 96년 올림픽에서 남자부 존슨(미국)에 이어 200m, 400m 석권에 성공한 프랑스 육상의 자존심.

97년에 찾아온 만성피로증후군으로 이듬해를 병상에서 보내고 지난해엔 5개 대회에만 얼굴을 내비쳤던 그는 옛 스승인 구동독 트랙의 명장 볼프강 마이어의 품으로 돌아간 뒤 컨디션을 회복, 당당히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어쩌면 피차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결전을 앞두고 두 선수는 각각 멜버른과 나라빈에서 비밀 캠프를 차리고 금메달을 향한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엇비슷한 실력만큼 입씨름도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다. 프리먼이 "올해 3번이나 나 때문에 대회에 불참한 페렉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 데 대해 페렉은 "94년에도 올림픽 우승 후 2년 만에 재기했다. 프리먼이 이번에도 나를 꺾기는 힘들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여자 400m 결승이 벌어지는 25일 밤 `호주의 심장'이라는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 누가 가장 높은 곳에 오를지 주목된다. (시드니=연합뉴스) 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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