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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와 함께 떠나는 '영혼의 오아시스'

중앙일보

입력

Joins.com 오현아 기자

폴 오스터의 작품은 한마디로 '극한의 소설'이다. 죽음의 순간을 연장하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벼랑 끝으로 자신을 몰고 가는 사람(〈달의 궁전〉)이 나오는가 하면, 선뜻 노름의 자금을 빌려준 청년이 돈을 날려버리자 50일 동안 벽돌 쌓기만 하는 남자(〈우연의 음악〉)가 나온다.

또 물 위를 걷는 것을 계기로 공중부양으로 먹고사는 청년(〈공중곡예사〉)이나 고독을 실험하기 위해 몇 달 동안 방안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는 남자(〈뉴욕삼부작〉)도 예사로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극한 상황에 처하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힘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다는 점에서 더욱 '극한적'이다. 오스터의 작품이 매력적인 것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주인공들의 드라마틱한 삶이 지극히 소설적인 우연과 교묘하게 어우러지는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펼쳐가는 우연의 드라마들은 작위적임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부감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그 안에 있다.

오스터가 젊은 시절 '빵'을 구하기 위해 썼던〈빵굽는 타자기〉,〈스퀴즈 플레이〉와 함께 나온〈동행〉도 극한의 상황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여타의 작품과 맥을 같이 한다. 다른 점이라면 개의 눈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것이다.

원제는 '팀벅투'(Timbuktu). 팀벅투란 아프리카 내륙 지방의 지명으로, 지친 영혼이 머무르는 피안이라는 뜻이다. 이 땅 너머에 있는, 피곤한 영혼의 오아시스가 바로 팀벅트이다. 이 책은 술에 찌든 몽상가, 광기의 시인 윌리 G. 크리스마스와 그의 충견 '미스터 본즈'가 팀벅투를 찾아 먼 길을 돌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한때 촉망받는 문학도였던 윌리는 정신질환을 일으킨 뒤 알코올 기운과 몽상으로 하루를 보내는 사회의 낙오자. 다른 사람들 눈에는 미치광이로 비칠 지라도 윌리는 고귀한 신념을 속내에 감추고 있다. 윌리는 풍요로운 삶을 자신의 손으로 내던진 채 '살아 있는 산타클로스'가 되어(자신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이름도 윌리 G. 크리스마스로 바꾼다) 사랑을 베푸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오스터의 또다른 소설〈거대한 괴물〉에서 소비 중심주의를 질타하며 자유의 여신상 모조품을 폭파하는 삭스와 윌리는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똑같이 빈털털이가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점에서도.

윌리는 팀벅투로 떠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고 자신의 문학적 감수성을 발견해준 고등학교 영어 선생을 찾아 브룩클린의 낯선 길을 헤맨다. 자신의 시가 빼곡이 적힌 일흔 네 권의 공책과 평생의 동반자 본즈를 그녀의 손에 맡기기 위해.

브루클린의 거리를 걷다 지친 윌리는 '포우랜드'(에드가 알랜 포우가 살던 집) 앞에서 본즈와 함께 잠이 든다. 꿈에서 파리가 된 본즈가 윌리의 최후를 지켜보는 대목은 오스터의 여늬 소설에서도 보이던 문학적 상상력의 또다른 극한을 보여준다.

윌리가 떠난 뒤 혼자가 된 본즈는 자신만의 팀벅투를 찾아 외로운 여행을 떠난다. 우울한 상상으로 외로움을 달래는 중국인 꼬마 헨리로부터 지독한 사랑을 받기도 하고 부유한 중산층 가정에서 기름진 고기와 따뜻한 수프를 맛보기도 하지만 그의 허전함은 좀체로 달래지지 않는다.

결국 본즈는 자신의 팀벅투가 윌리와 함께 하는 곳이라 생각하고 자동차가 질주하는 고속도로에 몸을 던진다. 일본 근대 소설의 대표작가 나쓰메 소세키의〈나는 고양이로소이다〉(문학사상사 펴냄)에서 고양이가 인간 세상에 염증을 느끼고 술독에 빠져 삶을 마감하는 것처럼. 크리스마스마다 낡은 산타클로스 옷을 입고 자기보다 더 부유한 사람의 주머니로 돈이 흘러들어가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윌리의 숭고함이야말로 이 땅에 팀벅투를 실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정신일지 모른다.

배고픔과 추위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본즈에게 윌리는 꿈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자네 신세를 생각하다 보면 슬프고 한심스러운 생각이 들 테지만 그럴 때면 길 잃은 개가 자네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게나"(이 책 170~171쪽) 우리도 본즈처럼 이 땅에 내던져진 길 잃은 한 마리의 개에 불과하지 않은가. 뼈속까지 파고드는 외로움을 견디려면 팀벅투로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본즈처럼 육체의 쾌락보다 정신의 고귀함을 이해할 줄 아는 똑똑한 개라도 말이다.

▶폴 오스터의 다른 작품들

*공중 곡예사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펴냄)
*달의 궁전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펴냄)
*우연의 음악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펴냄)
*거대한 괴물 (황보석 옮김, 열린책들 펴냄)
*동행 (윤희기 옮김, 열린책들 펴냄)
*빵굽는 타자기 (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스퀴즈 플레이 (김석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 뉴욕 삼부작(한기찬 옮김, 웅진 펴냄)
*아버지의 고독을 찾아서(이경덕 옮김, 호암출판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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