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지일보 2년간의 '엽기' 행각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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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 Books 편집장

인터넷 공간에서의 패러디 신문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딴지일보〉의 종이 책 버전이 나왔다. 제목부터 딴지일보 특유의 문법을 동원〈딴지일보 졸라 스페셜〉이다.

지난 98년 7월 창간한 〈딴지일보〉는 초기부터 정치인과 언론인 등 국내 유명 인사의 사진을 합성하거나 이름을 비틀어 패러디하면서 인터넷 사용자의 흥미와 관심을 모았다. 특히 현실 공간에서 찾아보기 힘든 날카로운 현실 정치 혹은 문화에 대한 혹독한 비판을 진행, '속시원한 패러디 신문'으로 역할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최근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는 '엽기적'이라는 단어를 변형된 의미로 처음 쓴 것도 〈딴지일보〉였다. 딴지일보 발행인인 김어준씨는 "이제 엽기는 과거의 엽기가 아니다. 터미널 잡지 혹은 신문 가십란에나 등장하던 변태적이고 탈규범의 행각을 묘사하던 단어가 차세대 문화코드로까지 승격되어 있다"고 이 책의 머리글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지난 2년 동안 딴지일보에 게재했던 글들 중, '발상의 전환, 주류의 전복, 왜곡된 상식의 회복, 발랄한 일탈' 등 딴지일보의 편집 지침인 '엽기'에 알맞는 대표적인 글들을 편집진들이 직접 추려내 종이 책에 맞게 재편집한 것. 앞에서부터 봐도 되지만 뒤부터 읽어도 되는 독특한 편집 형식을 가진 이 책의 앞 부분은 여늬 종이 책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뒷부분은 과거 대중 주간지의 대명사였던 〈선데이 서울〉의 스타일을 그대로 옮겼다. 〈선데이 서울〉이야 말로 딴지일보의 유일한 경쟁지라는 게 편집자들의 이야기.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모두가 "분명히 불쾌하지만, 반드시 유쾌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 때로는 유치하기까지 하다. 이는 이 기사들이 초점으로 삼고 있는 현상들이 훨씬 더 유치하고 불쾌한 까닭에 독자들로 하여금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한다. 불쾌한 현상을 비판하기 위해 비어, 속어, 욕설 등의 불쾌한 어법을 동원한 셈. 그러나 이 글들을 꼼꼼히 보자면, 〈딴지일보〉가 단순히 불쾌한 농담에 그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영호남으로 완전히 갈린 총선 결과를 놓고, 이들은 남과 북으로 갈린 이 나라가 다시 동서로 갈린 "후조선 삼국시대"라 규정할 수밖에 없다며, 지역 패권주의의 문제점들을 비판한다. 선거 후 대다수 국민들이 느꼈던 감정을 욕설을 섞어 풀어놓은 글이다. 어느 종합 일간지의 논설을 비판하기 위해서 외국의 신문을 샅샅이 읽어내려가는 글에서는 이들이 펼쳐가는 농담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딴지일보〉의 관심사는 정치 현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민 대다수의 관심이 쏠리는 곳이라면 어디든 〈딴지일보〉의 화살이 꽂힌다. 코스닥에서 떼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는 시기에는 코스닥을, 보신탕을 놓고 외국인 여배우의 비난이 있을 때에는 보신탕을 문제삼는다. 또 코소보 전쟁에 대한 '딴지'식의 비판 역시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다.

〈딴지일보〉의 농담과 욕설이 섞인 패러디에 대한 일반인들의 평가는 다양하다.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사회 현상들을 너무 가볍게 처리함으로써 사회적 모순에 대한 불감증을 야기한다거나, 혹은 농담 몇 마디 던진 것으로 사회적 책무를 다한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것 아니냐 하는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농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 사회의 금기 영역에까지 비판의 칼날을 휘둘러대는 〈딴지일보〉식 농담은 단순히 독자들의 일회적 자족감 뿐 아니라, 〈딴지일보〉가 주장하는 이른바 '똥침을 날리는' 대안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딴지일보〉는 앞서 인터넷 기사를 종이책에 그대로 옮긴 〈딴지일보〉(모두 4권, 자작나무 펴냄)를 낸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낸 책은 〈딴지일보〉가 '(주)딴지그룹'이라는 이름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고 앞으로 종이 책 출판에도 나설 것임을 보여준 첫 책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대안언론의 역할을 맡았던 〈딴지일보〉가 아날로그 공간에서 어떤 활약을 하게 될 지 기대하게 된다.

▶이 글에서 이야기한 책들
*딴지일보 (모두 4권, 자작나무 펴냄)
*딴지일보 졸라 스페셜 (딴지그룹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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