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사상에서 찾아낸 동양의 과학마인드

중앙일보

입력

요즘 세간의 눈길은 도올 김용옥에 쏠리고 있습니다.

얼마전 EBS 노자 강의도 시끌벅적 했는데, 10월부터는 그가 '노는 멍석' 이 엄청 커지기 때문입니다.

공영 KBS라는 매체에서 논어 강의로 1년간 마이크를 쥔다하니 그 '먹물 엔터테이너' 에 대한 관심은 당연하지요. 그러나 강의 방향은 대충 가늠이 됩니다.

공자가 탁월한 아티스트였다는 해석, 공자와 제자 사이의 풍부한 인간사도 언급하겠다는 그의 발언으로 미루어 도올의 전략이란 논어를 붕어빵 틀에 집어넣었던 후대의 국가 이데올로기(經學)를 넘어서보겠다는 것이겠지요.

이번주 우리의 테마는 〈중국의 과학과 문명〉의 저자 조셉 니덤(1901~1995)과, 이번에 축약본 신간이 다시 선보인 저작물인데, 아마도 공자를 가장 우습게 본 사람이 바로 니덤이 아닌가 싶습니다.

니덤은 무엇보다 공자의 합리적 이성주의가 자연과학에 형편없는 기여를 했다고 맹공을 합니다.

그의 지적은 공자가 가진 낭만적 성향을 충분히 인정할 정도로 탄력을 가졌기 때문에 외려 설득력이 높습니다.

그가 예로 든 〈논어〉선진편을 보실까요? 자로(子路)를 포함한 총애하는 네명의 무릎제자들이 모였습니다. 슬쩍 공자가 찔러봅니다.

"만일 내가 중책을 맡긴다면 그 때 너희들은 무엇을 할 셈인고?" 쭈뼛대던 제자들이 제각기 으리번쩍한 마스터플랜을 꺼내놓지만, 웬지 공자는 심드렁합니다. 이때 증석(曾晳)이 한마디를 던집니다.

"멋진 봄옷 차려입고 좋은데서 벗들과 노래나 읊으렵니다." 이 엉뚱한 대답에 공자가 무릎을 칩니다.

"내 마음 너와 같다." 니덤은 이를 근거로 유교가 '합리성과 낭만성의 종합' 이자 중국문화의 전형이었다고 평가를 내립니다.

문제는 니덤이 보기에 겨우 '위정자에게는 현학적인 작은 훈계' 였던 공자의 이성주의란 너무 인간사(事)에 관심이 쏠려 자연(物)에 대한 탐구를 부정했다는 것이죠. 아는 사람은 대충 아는 이런 얘기 끝에 니덤은 주저없이 노장(老莊)의 손을 들어줍니다.

신비주의 경향의 도가야말로 동양의 과학마인드를 배양한 위대한 사상이라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그의 책을 읽는 핵심 열쇠라고 봅니다.

어렵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우선 서양 중세의 연금술 등 신비주의적 마인드가 근대 화학의 기반이 됐던 점을 한번 연상해 보시지요. 니덤이 볼 때 도가사상은 기본적으로 '자연주의적 범신론' 이었고, 그들은 자연에 관한 순수한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죠. '천지는 자비롭지 않다(天地不仁)' 는 〈도덕경〉속의 이 유명한 말을 기억합니까.

니덤은 예기치 않게도 이 말이야말로 '윤리적 판단을 자연과학으로부터 추방시킨 명제' 라고 한껏 추겨세웁니다.

서양 근대과학의 핵심인 가치중립주의가 노장 사상에 이미 있었다는 기발한 분석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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